"신라인의 멋 간직 천혜의 城南離宮터" 신라 멸망의 한많은 사연들을 꼬깃꼬깃 조막손에 움켜쥔 포석골. 벙어리 냉가슴으로 천년을 살아왔다. 이제 그 한마저 새까만 재가 되어 분노도 슬픔도 모두 스러졌다.
포석골 포석정은 서남산 기슭 여낙낙한 숲속에 웅크린듯 자리잡고있다. 경부고속도로 경주톨게이트에서 포항산업도로를 따라가다 서남산 도로로 빠져 5분가량을 차량으로 달리면 이내 포석골은나타난다. 포석골의 원래이름은 부엉골. 골이 너무 깊어 낮에도 부엉이가 운다해서 붙여진 이름.포석정 둘레에 쳐진 나지막한 돌담. 기와를 지붕으로 얹고 흙과 돌로 담을 이은 솜씨가 제법 옛맛을 내기는 했지만 어설픈 흉내가 못내 안스럽다. 포석골 일대는 임금의 별궁인 성남이궁(城南以宮)터. 임금이 행차해 신하들과 술잔을 돌리며 중신들의 노고를 치하하던 곳이다. 멀리 포석마을 대나무터와 인근 계곡모두가 풍류를 즐기기에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있다. 그렇다면 포석정 하나만으로 어찌 신라의 향내를 맡을 수 있을까?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와 흐벅진 계곡, 산기슭의 대나무숲이 어울려야만 포석정은 정자로서의 참다운 면모를 가질 수 있는 법. 앞뒤가 꽉막힌 문화행정은 포석정을 담장으로 쳐진 감옥속 볼모로 만들어 버렸다. 그 탓에 산과 계곡 자연그자체를 정원과 놀이터로 삼던 신라인들의 맛깔나는 향취는 사라져버리고 박제된 유적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포석정은 돌홈 모양이 구불구불하여 전복(鮑:포)껍질 모양과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 석구(石溝)에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도록 돌홈을 팠다.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계곡과 산을 정원으로 삼아 유상곡수(流上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노래와 춤을 즐기던 신라인의 멋과 가락. 이제 어디서 그 아름답고 향기로운 풍류를 볼수 있을지…. 견훤의 습격을 받아 이자리서 연회를 베풀던 경애왕은 끝내자결을 해버렸다. 또 고결하신 왕비는 견훤에게 몸마저 망쳐버렸으니, 신라인들에게는 치욕의 장소이기도하다. 그렇다고 해서 포석정이 퇴폐와 향락으로 물든 왕가의 놀이터로만 단정지울 순 없다. 인근 남산신성을 지키는 장수들과 충신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일은 국정을 다스리는 왕으로서는 통치권의 수단이다. 포석정은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여가와 휴식의 자리였다. 또 나라를망친 건 쇠잔한 세월과 못난 사람탓이지 애꿎은 포석정 때문은 아니다.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주연을 즐기던 유적은 옛날 중국과 일본에서도 있었다 하나 오늘날까지 그 역력한 유적이 남아있는 곳은 오직 남산 포석정뿐. 멀리서 물을 끌어들여 거북모양의 돌에서 물을 토해 도는 곡석(曲石)포석정. 거북모양의 돌은 1871~1873년사이 누군가가 안동으로 옮겨갔다고 전할 뿐 소재가 밝혀지지 않고있다.
또 물을 끌어들인 수원지로 추정되는 곳은 직선거리로 2~3백여m되는 배성못. 계곡에서 흘러온 맑디 맑은 물이 괸 배성못은 깨끗함이 가득 배어 있다.
배성못에 대나무 홈으로된 관을 연결, 물을 토하고 빙글빙글 술잔을 돌도록한 유체공학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신라49대 헌강왕은 포석정에서 남산신(神)이 추는 춤을 흉내내 너풀너풀 어무산신무(御舞山神舞)를 추었다. 얼쑤거리며 추었을 그 환희와 열정은 포석정 곳곳에 스며들어 향기로운 빛을 발하고있다. 헤어졌던 어여쁜 옛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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