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이 구석 저 그늘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비관에쉽게 빠져든다. 제대로 된 것도 없지만, 도대체 '없는 것도 없다'는 것이 또 우리사회의 역설이다.모든 것은 적당히, 졸지에, 뒤섞여서, 우리 주위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를 서두르는 지금개화 이후 1백년의 근대화는 눈부시게 완성된 듯 보인다. 아니 지표상으로는 오히려 우리의 조급한 근대화가 서구를 앞지르고 있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독일인 친구가 공중전화기 주변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본 모양이다. 이상하게 여겼는지 정색을 하면서 내게 그 이유를 묻는다. 나 역시 조금 이상한 민족주의를가슴에 품고 사는지라 그만 딴전을 피우면서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그 풍경은 근대적 합리주의를 체득한 그의 눈에는 매우 이상하게 보였을 법도 하다. 일전에는 마침내 핸드폰 신청자가 인구의 10%%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있었다. 못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정녕 '이상한 근대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상한 것이 근대화한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학교폭력등 작금 무분별한 10대들의 일탈을 다투는 기사와 온갖 처방전이 범람하고 있지만 역시 그 기본을 다지는 한축은 교육일수밖에 없다. 그 조령모개(朝令暮改)의 무원칙과 반철학에 대한 비판은 이제는 진부한것이어서 재삼 토의할 마음마저 생기지 않는다. 오죽하면 경북대의 어느 교육학 교수가 "교육개혁, 부디 그만두십시오"(교수신문, 1996년12월16일)라는 글을 기고할 지경이 되었겠는가. 각설하고, 오늘은 인식과 성숙, 앎과 삶 사이의 괴리와 소외의 문제만을 잠시 건드린다.
일제의 '산업전사배출형'모델을 간신히 벗어나고 있는 우리의 교육체제는 자못 방대하고 조직적이다. 학습의 양으로 쳐도 전대미문이다. 우리 초중고교생의 연간 수업시간은 OECD 소속 국가의평균 1.3~1.7배에 이르며, 성인중 대학졸업자의 비율도 선진외국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5대도시의 한집 월평균 사교육비가 21만원이며, 대구시만해도 한해 1천5백96억원이 뿌려진다고 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근대화의 종주국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 겉은 '근대화 이상(以上)'인듯 보이지만, 속은 '근대화 이상(異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삶이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수없는 시간을 인식과 앎에 투자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우리의 인식이 성숙으로 옮아가지 못하고, 우리의 앎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년동안 하루 5시간 이상을 오로지 앎만을 위해서 바친 삶! 한때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왜 지금의 내게는 거의 미친짓처럼 느껴질까? 인식중심주의와 문제풀이로 엮어진 지금의 교육체제 아래에서 20년동안 하루 5시간 이상 '영어의 왕도'와 '수학의 정석'따위를 머리 속에 채우느라고 고생하는 것보다 20년동안 하루 5분씩이라도 밤하늘을 쳐다보거나 마을청소를 하는 것이 거의 모든 면에서 낫다고 판단한다면?
당연히 모든 앎의 권리원천은 삶이다. 인간의 성숙과 삶의 변화를 외면한 앎은 유행이며 허식이고, 제도이며 억압일뿐이다. 성숙과 삶에 봉사해야할 인식과 앎이 오히려 파행적으로 기승을 부리며, 제도와 구조의 힘으로 어린 마음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근대화, 이상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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