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프로주부-황금동 칠박사, 옥정희씨

"집안 살림만 할때는 직장 여성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3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완전한 전업주부로 있다가 칠을 배우고나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나도 이 세상에 꼭 필요한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거든요"

황금 우방타운에 사는 주부 옥정희씨(41)는 할일없이 주부들끼리 몰려다니거나 맛있는 집만 찾아다니며 시간을 죽이는데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 만만찮은 육체노동에다가 특유의 페인트 냄새가 머리속까지 뒤흔들어놓는 '칠'만 하면 신바람나는 '칠박사'이다. 남편은 집안 인테리어를 하는 것까지는 좋아했지만 속칭 '노가다'로 불리는칠 일에 두손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칠 일이 있는 날 아침 옥씨는 전쟁을 치른다. 아침상을 물리기 전에 빨래를 끝내고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과 아이들이 그의 빈자리로 인해 공허함을 느끼지않도록 하려는 섬세함때문이다.

몇년전 내집 단장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칠솜씨는 '발없는 말'을 타고 살살 알려지기 시작, '전문가 뺨친다'는 평과 함께 시나브로 일감을 물고 온다.

당장 해야할 일감은 이 아파트 202동에 사는 주부로부터 의뢰받은 책장 칠하기. 책장 칠이 끝나면 바로 33평 짜리 아파트 내부칠하기가 기다린다.

"아파트 벽지를 새로 칠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요. 일을 하면 몸은 고되지만 잡념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소화도 잘돼요"

그가 칠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겁없이 집안 도장을 시작하고 부터이다.지은지 10년 이상된 옥씨의 아파트는 창문이며 방문이 새로 지은 아파트와는 달리 짙은 갈색이어서 집안에 들어서면 훤한 느낌이 나지않고 어둡고 답답한 인상을 주었다. 어쩌다 친구의 새 아파트에 갔다온 며칠 동안은 집이 더 어두워보였다.

"집 내부를 밝은색으로 바꿔보려고 페인트점에 갔는데 꽤 큰 비용을 요구했어요"평소 인테리어에관심이 많던 그는 손수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하나둘 손대기 시작한 집안은 거실 바닥만장판집에서 맞추었을뿐 전부 옥씨의 손으로 재단장됐다.

"어느날 반상회가 열렸는데 이웃들이 와보더니 너도 나도 칠해달라는 거예요"재료를 아끼지않고,사포질을 꼼꼼하게 하고, 6~7번씩 덧칠을 하는 옥씨의 칠솜씨는 십수년된 전문 칠쟁이보다 낫다고 주변에서는 입을 모은다. 옥씨의 칠솜씨를 친구들에게 자랑, 심심찮게 일감을 맡아주는 매니저(?) 아줌마도 있다.

"처음 칠을 할때는 냄새에 취해 쓰러진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요령이 붙어서 칠할때는 꼭선풍기를 틀어놓아요"

칠집에 맡긴 것보다 더 색상을 잘 고르고, 꼼꼼하게 칠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때면 사는맛이 절로 난다는 그는 전문 칠집의 절반값에 일감을 맡는다. 붓과 페인트만 들었다하면 온집안을 새로 바꾸는 마법의 손을 지닌 옥씨의 40대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기쁨으로 넘쳐난다.〈崔美和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