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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자 '모세'를 본받아 일본을 무너뜨리고 조선에 해방을"

반백년을 훌쩍 넘어 백발이 성성해진 독립운동가 김종호(金鍾鎬.90.경산시 진량면), 김선수(金善壽.80.〃), 이종호(李鍾昊.75.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선생.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이 최고조에 달했던 1943년 6월. 교회조차 신사를 걸어놓아야 종교집회가 가능했던 시절, 이들은 경산시 진량면 봉회교회에서 항일집회를 준비하다 일경에 체포됐다. '조선만세' '일본타도'를 기도회 강령에 넣었다가 치안유지법으로 끌려간 청.장년만 14명. 일명 '진량봉회교회 출애굽 사건'이다.

혹독한 고문이 뒤따랐다. "쇠심줄로 등허리를 맞으면 살이 묻어 나왔습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지요. 십자가 형틀에 몸을 묶고 솜으로 입을 막은 채 코안으로 물을 부었습니다.배가 불러지면 거꾸로 세워 토하게 한 뒤 다시 물고문을 했죠" 당시 21세의 청년이었던 이종호선생은 고문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8.15광복 52돌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 늙은 독립운동가 세사람이 먼저 간 동지 현준이(玄俊伊.작고)선생의 묘를 찾았다. 1년6개월을 미결수로 지내며 식민지 조국에서 피눈물을 삼켜야 했던 이들은 이제 거의 세상을 떠나고 남은 이가 이들 세 명.

"준이 형의 생일 날,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감방에 넣었지요. 이게 탈이 돼 준이 형은 일경 오카자키에게 엄청난 폭행을 당했습니다. 입을 벌리자 뼈가 부서져버린 준이 형은 눈물을 흘리며 다른 동지들에게 음식을 나눠줬습니다"

이종호선생은 "친일파가 아니면 모두 범법자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8개월의 고초를 겪고 형무소를 나왔을 땐 고막이 터지고 척추에 염증이 생긴 이가 절반. 해방이후 같은 민족이면서 동포를 짐승 취급했던 고문기술자 임종규를 만났지만 울분을 삭이며 그냥돌려보냈다고 했다.

그후 세월은 반백년. 많은 사람들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될 때 공적서를 넣어볼까 생각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알아달라고 한 일이 아니었지만 보훈관련 기관의 푸대접은 늙은 운동가의 가슴을멍들게 했다. 지난해 비로소 유공자 포장을 하나씩 받아 쥐었다. 그나마 세상을 떠난 이들은 유공자에서 제외됐다.

역사적 사실이 재조명되는 듯해 마음이 가볍다는 이들은 이 말만은 꼭 하고싶다고 했다. "죄를용서하더라도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습니다" 〈全桂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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