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럽 대륙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아시아와 가까운 나라는 핀란드(핀족)와 헝가리이다. 동방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 다뉴브강에 자리잡은 기마민족(마자르족)이 세운 도시,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면 무엇보다 헝가리인들의 외모에서부터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문화적인 헝가리는 이미철저히 유럽화된지 오래이다.
'다브뉴 강의 진주'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부다페스트는 10세기에 건설되었는데, 강을 사이에 두고서쪽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로 나누어져 있다가 합쳐진 데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구 사회주의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수교해, 북방정책의 첫 성과로 기록되었던 헝가리는 동구에서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곳.
여간해서 동유럽까지 오지 않는 배낭 여행족들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까지 온 김에 동쪽으로 조금 더 와서 부다페스트에 들렀다 가고는 한다. 부다페스트 역에 내리자, 현지 한국 식당과 민박집주인들이 분주히 한국인들을 찾아 호객을 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리스트를 낳은 세계적인 음악의 도시인만큼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하는 한국 학생들도 많았다.
동구에서는 가장 만저 개방을 시작한 나라답게 헝가리의 서구화 속도는 빠르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이 되었고 나토(NATO)가입도 확정돼 엄연한 유럽 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있다.
사업차 부다페스트를 자주 들른다는 중소기업인 김택씨(43)는 방문할 때마다 달라진 점을 느낄정도로 변화속도가 빠르다고 전했다. 새로운 건물이나 쇼핑센터가 들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주의 체제특유의 경직된 분위기를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변화가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싸던 물가가 어느덧 서유럽 수준으로 접근했고,숨가쁘게 돌아가는 여느 서구 도시처럼 각박해진 점도 있다.
헝가리는 한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지배를 받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었다. 이 때문인지 부다페스트는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오래된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또 그전에는 터키(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2차 대전 후에는 소련의 영향을 받았으니, 헝가리의 역사는 온톤 속박과 억압으로 이어졌다. 자유를 향한 헝가리인들의 저항도 거셌는데, 우리에게는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 어느 소녀의 죽음'으로 잘 알려진 1956년 헝가리 사태는 공산권에서 일어났던 첫번째 반소·반공운동이었다.
'중부 유럽의 파리'로 불릴 정도로 건물 하나, 거리 하나에서도 예술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부다페스트를 보아도 이 나라가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공산화의 길을 걸었던 것은 자의가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가장 먼저 사회주의권에서 이탈한 헝가리는 동구에서 가장 러시아어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꼽힌다. 현재 헝가리는 독일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마르크화(貨)가 가장 잘통하고 호텔이나 공항의 안내책자에도 영어보다는 독어가 먼저이다.
거리에서 어떤 엽서를 사도 다뉴브 강의 모습이 빠지지 않고 들어갈 정도로 이 강은 부다페스트와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기위해 밤의 유람선을 탔다. 이어폰을 통해 10여개 언어로 안내방송을 골라서 들을 수 있는데,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었다.부다페스트는 경제나 문화적인 면에서 중부유럽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나가고 있었다. 세계 금융계의 큰손이며 동구에 대해 광적인 관심을 쏟는 것으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도 자신의 동구 진출 거점을 헝가리로 삼고 있는데, 그가 세운 중부유럽대학도 바로 부다페스트에 있었다.
이 중부유럽대학은 중동부 유럽의 경제자유화화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이론적 기지(think tank)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인이 유럽에 세운 이 오래된 도시가 동서유럽의 가교로서 엄청난 변혁의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金起顯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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