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주사파'와 '배꼽'티'

작년 9월 중순 북경에서 열린 '통일을 위한 남북해외동포학자 학술회의'때 있었던 일이다. 회의둘쨋날 김일성종합대 김양환교수가 느닷없이 남한의 한총련 문제를 꺼냈다. 그는 한총련 학생들의 통일운동을 남한의 대학교수들이 왜 돕지 않느냐고 힐난했다.

기가 막혀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우리측 교수들이 얘기를 시작했다. "남한의 학생운동은 정치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의 뜨거운 정의감과 헌신성은 시민사회의 민주적성장에 밑거름이 되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에 대한 참사랑은 앞으로도 통일국가 수립에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을 행동의 지침으로 삼거나 북한과 정치적 연대를 꿈꾸는 일부의 운동노선은 남한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주사파. 그이름에서 나오는 음습한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낡고 허술한 세계관 때문에 그들은 사회적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남한 교수들은 우리 현실에 대해 북한측의 오해가 없기를 촉구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지금 남한의 대학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사실 한총련 학생들이 아니다. 한총련 사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너무 많은 학생들이 고시준비를 하고, 좋은 직장을 가려고 하고, 자기 이익의 추구에 전념하고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대학이 학문 전수의 장이 아니라 취직을 위한 전문학원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교수들 사이에 상당히 높다. 요컨대 공동체 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개인적 출세나 즐거움에 연연하는 젊은이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 걱정거리다"대구로 돌아와서도 북경에서 있었던 우리 학자들의 대학사회 문제점-극단적 좌경화와 우경화 현상에 대한 지적이 생각할수록 그럴 듯하다고 느꼈다.

우리 대학사회에는 오늘날의 국제관계를 제국주의 연합세력과 반제자주평화세력의 대립구도로 보는 시대착오적 분석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국내정세를 통일민주애국세력과 식민지파쇼통치세력의 대결로 정식화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안이한 추상도 있다.

다른 한편 우리 대학사회에는 우려할 정도의 극단적 이기주의와 소비지향적 풍조가 팽배하고 있다. '배꼽티'. 그 선정적 이름이 은밀하게 암시하듯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적 이익과 찰나적 탐닉에 대한 관심이 적지않게 있다. 배꼽을 내어 놓고 교정을 거니는 학생들이 정말있다.

오늘날 우리 대학사회에 존재하는 이런 두가지 극단적 문화양식을 어떻게 하면 건강한 규범의 틀속으로 조율해 낼 것인가. 이것이 우리 대학발전의 관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집단적이고 이념지향적인 '주사파'에게는 그들의 지성적 나태함에 대해 엄중하게 반성하도록 하고 이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돌멩이를 손에 들고 있는 아이들에게는우리사회가 '투석(投石)의 시대로부터 투표(投票)의 시대로', '바리케이드(baricade)의 시대로부터발코니(balcony)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민주화를 추진해온 주요한 동력은 권위주의 진영의 바리케이드를 향한 투석의 힘으로부터 나왔지만, 오늘날민주화의 동력은 의사당 발코니를 향해 던지는 투표의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개인적이고 물질지향적인 '배꼽티'에게는 그들의 사상의 빈곤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어야 할 것이다. 청년들이 이웃에 대한 연민을 가지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대학사회의 극단적 좌경화와 우경화 현상을 보면서 좌파의 위선과 우파의 부패를 항상 경고하며정치사상사를 가르치시던 한 노교수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떠올려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