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慶州남산-유적 파괴현장 (上)

"개발에 상처난 신라의 정수리" 가슴 저미는 감동을 안겨주는 남산에도 지워지지 않은 징그러운 흉터가 있다.

자발없는 중생이 저지른 만행. 그중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흉터가 산정상을 가로지른 남산관광일주도로. 곱게 풀어내린 미녀의 머리카락에 탄 인위적인 가리마처럼 모양새가 어줍게된 형상이다.일주도로는 포정골에서 시작, 국사골어귀에서 끝난다. 총연장 8.7㎞ 폭6m. 지금은 잡초가 우거지고 나무들이 들어서 일부도로는 폭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보기싫은 흉터자국으로 남아있다.고이 간직해도 부족해야할 문화유적의 보고(寶庫) 남산에 불도저와 덤프트럭이 침공 을 한 것은66년 5월. 조국근대화란 허울좋은 미명아래 덤프트럭 4백대, 컴프레서(공기압축기)2백71대, 불도저4백5대와 함께 죄수가 대부분인 인부 11만2천8백98명이 동원됐다. 공사기간 역시 7개월로 단숨에끝내 버렸다.

산 토박이 김상인씨(51)는 도로개발당시를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숲이고 문화유적이고 할것 없이 불도저로 마구 밀어버리고 말았지요. 공사장에 끌려온 죄수들이불도저가 전복되는 사고로 죽기도 부지기수였지요… 일주도로를 위해 동원된 죄수들은 산기슭에텐트를 치고 솥을 걸어놓고 생활을 했다. 덕분에 동네처녀들은 행여 봉변을 당할세라 밤길을 돌아다니지 못했고 고달픈 일과를 마친 죄수들은 퉁소와 대금으로 향수를 달랬다고 김씨는 당시를회고했다.

동남산 국사골과 오산골어귀 사이 큰 언덕. 칠불암 가는 길에 널린 고인돌군은 도로건설로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청동기시대 유물인 고인돌군은 이 언덕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지금은 6기가량만이 얼기설기 남아 파괴의 현장을 말없이 보여주고있다.

사골에서 길게 뻗은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걷기를 50여분. 평평한 비포장도로에서 칠불암 3.6㎞라 쓰인 표지를 만난다. 사자봉으로 통하는 오솔길. 2.5m 가량되는 큰 바위위에 1m80㎝쯤 되는남산관광일주도로준공비 가 서있다.

석에 쓰인 내용을 읽어보면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조국의 근대화와 관광자원개발을 부르짖는 정부시책에 호응, 박정희대통령각하의 분부에 따라 ○○○군사령관, ○○경북도지사, ○○○경주시장외 다수인사의 뜻을 모아 이사업을 착공하게 되었다 고 사업목적을 밝히고 있다. 각하의 분부란 촌스런 표현은 차치하고라도 조국근대화와 관광자원개발이 어떻게 신라천년의 숨결을 간직해온 남산에 적용될 수 있었는지 아리송하다.

더욱 기가 찰 일은 도로준공 후 다시 도로폭을 더 넓히려했던 발상이다. 거센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지만 자연과 문화유적의 파괴란 거대한 숲을 보지 못한채 개발이 곧 관광자원확보라 믿는 문화당국의 답답한 시각을 보는 것같아 씁쓸함을 지울수 없다.

다시 길을 돌아 상사바위에서 북쪽으로 걷기를 수십여분. 널펀한 바위군이 호젓한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했더니 또하나의 흉물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만다. 시멘트 구조물위에 지붕기와를얹은 남산 전망대 금오정(金鰲亭) . 바위군들이 군데군데 모여 자연적인 전망대구실을 하고있는데 굳이 볼썽사나운 정자가 필요했을까. 굳이 정자를 지으려면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친환경적인구조물건축도 가능했을터…. 전망대라기보다 전망파괴대 로 명칭을 바꿔야 어울릴법하다. 게다가구조물기둥마다 지각없는 등산객의 낙서로 엉망이 다 돼버렸다.

일주도로와 전망대를 만든 책임자들은 천상에서 천년전 서라벌사람을 만나면 어떤 구차한 변명을하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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