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慶州남산(44)-山을 지키는 사람들

"숨겨진 신라의 향기를 우리곁으로" 남산을 위해 구슬땀을 흘려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있었기에 남산은 천년의 빛깔과 향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폐허의 더미에서 숨겨진 보물구슬을 찾아 꿰고 닦아 빛내온 사람들.윤경렬옹(82). 남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윤옹을 '남산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른다. 한국의 얼굴, 우리 얼굴을 찾기위해 평생을 보내온 윤옹. 윤옹은 20대의 젊은 시절, 고향 함북 주을을 떠나개성을 거쳐 49년 경주에 터를 잡았다.

윤옹이 경주를 찾은 까닭은 스승 고유섭 선생때문이었다. 우리 얼굴을 찾는 방법만 가르쳐 달라는 윤옹의 간곡한 부탁에 당시 개성박물관장이던 고선생은 경주를 화두(話頭)로 제시했다. 경주에서 갖은 고생을 했다. 흙으로 빚은 인형 '토용(土俑)'을 내다팔며 생계를 이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윤옹의 '신라찾기'는 계속됐다. 불상을 통해 바라본 한국인 얼굴의 원형. 그 원형들은 남산에산재했다. 윤옹에게 남산은 거대한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연구에 착수하기를 주저했다. 윤옹은 혼자 남산을 느끼고 만지는 데만 열중했다. 윤옹이 남산을 본격적으로연구하기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 부터 20여년전인 환갑무렵. 당시 남산에 대한 책이 해방전 일제가 연구한 책뿐으로 남산기록 역시 일제잔재에 드리워져있다는 자괴감때문이었다. 남산을 연구하자니 당연히 고고학.역사학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남산을 수백번 올랐다.

윤옹은 일제가 기록한 남산 절터 55개소외에 50여개 절터를 더 찾아냈다.

남산기슭 현지주민에게 막걸리를 대접하며 구전설화도 채집했다. '경주남산고적순례' '겨레의 땅부처님 땅'등 남산에 대한 책을 써내며 남산전문가의 명성도 얻었다. 이때부터 윤옹에게 따라다닌 명칭이 향토사학가. 국졸학력뿐인 윤옹이 이룬 업적은 남산에 관한한 어떤 대학교수의 업적보다 뛰어나다. 학계에서 잘못 인식되고있던 서출지.삼화령에 대한 의문제기도 윤옹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윤옹은 항상 겸손하다. 윤옹은 후학들이 일제치하에서 식민사관의 때를 벗지 못하고 있는자신을 뛰어넘어 새로운 남산의 모습을 구축하길 바라고있다. 윤옹은 술에 젖으면 팔순의 고령에도 아직 고향의 어머니를 찾는다.

남산 최고의 길라잡이 김구석씨(43). 김씨는 한마디로 남산에 미친 사람이다.

김씨에게 남산안내를 받은 사람이 매년 평균 1천여명. 김씨는 남산을 안내하며 자신을 이름에 빗대 '집구석'이라 소개한다.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남산연구에 뛰어든 김씨는 윤옹의 제자이기도하다. 남산에 대한 강의도 수년전부터 시작해 매년 5백여명에게 남산사랑을 가르치고있다. 담배도라지만을 연신 피워대는 골초 김씨는 나이가 제법 들면 체계적인 남산연구를 시작, 책을 내고싶어한다.

'경주의 김정호'라 불리는 송재중씨(52.신라중교사). 송씨는 틈만 나면 남산에 올라 유적을 살핀다. 2백여회의 답사끝에 송씨는 경주 남산의 문화유적, 등산로를 입체화한 '남산지도'를 지난 92년 만들었다. 기존의 경주남산 유적지도가 대부분 어림짐작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지도제작의 동기. 대전이 고향인 송씨는 이제 경주사람보다 더 남산을 사랑하게됐다.남산을 지켜온 단체들. 그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신라문화동인회(회장 김태중). 신라문화동인회는 지난 58년 발족돼 남산의 숱한 문화재를 발굴해냈다.

지난해만도 남산 냉골 폐사지등 남산 유적 5개소를 발견, 학계에 보고됐다. 지난 84년설립돼 남산기행과 홍보를 하고있는 부처님마을(촌장 도문스님) 남산사랑모임(회장 김구석) 신라문화진흥원(원장 진병길)도 남산을 가꾸어온 아름다운 모임들이다. 이들단체는 남산무료안내와 남산강의, '남산달빛기행'을 열며 남산사랑을 곳곳에 심어가고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