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때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고택, 시속(時俗)의 요란스런 흔들림과는 상관없이 자연의 한 모습이 되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종가는 도시인에겐 마음의 고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아파트생활, 주문김치 등으로 집집마다 저마다의 김치맛이 사라지는 요즘, 종가의 김장김치는 어떠할까, 궁금해진다. 옛어머니들의 손맛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까. 그러나 실제로 대다수 종가의 경우 도시가정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그집만의 독특한 김치맛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노인들만 지키고 있는 종가에서는 더이상 과거처럼 동네 일가아주머니들이 왁자지껄하게 김치를 담그는모습도 사라졌고 김장독을 땅에 파묻는 모습들도 보기 어려워졌다. 두어포기씩 그때그때 담가먹는 집이 대부분이고 도시로 나간 종가중에는 주문김치를 사먹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부종가에서는 나름대로의 별미김장을 지키고 있다.
▲안동군 풍천면의 풍산유씨 서애(西厓)종가. 이 종가의 14대 종부 최소희씨(70)가 즐겨 담그는사연지김치는 담그는 방법과 맛에서 독특하다. 원래 서애종가의 전통적인 김치는 아니고 친정인경주교동 최씨집안에서 배워온 김치이지만 수십년 계속 담그다보니 이제는 이 종가의 명물김치가됐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생새우와 조기를 넣어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것이 비결.멸치젓국을 달여 종이에 받쳐 맑은 국물을 걸러낸후 생새우 달인 물을 함께 섞고 다진마늘, 생강즙, 청각을 넣는다. 절인 배추를 이 국물에 담갔다 건져낸뒤 실고추, 무채, 배채, 밤채, 석이버섯채, 생강, 마늘, 갓, 깨 등 갖은 양념 섞은것을 이파리마다 고루 바른다음 복판에 생조기를 한토막씩 넣어 빠지지 않도록 잎으로 돌돌 말아 단지에 넣는다. 이때 절인 무를 단지 밑바닥에 놓고 양념배추를 위에 얹은뒤 젓국물(멸치젓국과 생새우 달인 물)을 붓는다.
지 몸에서 나온 국물과 합해져서 익으면 새콤달콤한 것이 참 맛이 좋습니다 최씨는 또 사연지김치외에도 양념배추에 갈치토막을 넣은 갈치지와 배추를 멸치젓국물양념에 버무린 멸치젓지(갈치를 넣은 배추김치, 멸치젓김치), 동치미도 김장철이면 빠뜨리지 않고 담그는 김치라고 말했다.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무안(務安) 박씨 무의공(武毅公) 종가에서는 생선속을 즐겨넣는 동해안지방의 김치풍습대로 생갈치나 생명태, 생멸치 등의 여러가지 생선을 넣어 김장을 한다. 갈치는 흰비늘을 벗긴뒤 뼈째 토막썰고 명태는 살부분만 포를 뜨며, 멸치는 대가리를 자르고 반 갈라 내장을 버린후 각각 소금에 절여둔다.
찹쌀풀에 달인 멸치젓, 고춧가루, 다진 마늘, 무채, 배채, 밤채, 갓, 미나리, 소금, 깨 등. 그러나 파나 당근은 넣지않는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고루 비비고 역시 양념을 묻힌 생선토막을 속에 박아넣는다. 갈치나 멸치를 넣은 김치는 구수한 맛이 나고, 명태를 넣은 것은 잡맛없이 깨끗합니다.푹 익으면 살은 물론 뼈까지 다 녹아서 맛도 있고 영양가도 높지요 종부 김화자씨(51)의 설명이다.
이 종가가 자랑하는 또한가지 맛김치는 무김치. 무를 툼벅툼벅 큼직하게 썰어 소금에 절여 하룻밤 재운뒤 배추김치와 같은 양념에 비벼서 무만 한단지 담가둔다. 익은뒤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맛이 기가 막힌다고.
▲경주군 강동면 양동리 여강(驪江) 이씨 종가의 종부 이정사씨(53)도 생갈치를 넣은 김치를 별미김치로 소개했다. 갈치를 회보다 조금 크게 썰어 하루이틀 소금간을 해두고 김치속은 찹쌀풀을끓여 고추, 마늘, 소금, 생강, 갓, 무채, 당근채, 미나리, 깨 등 갖은 양념으로 만든다. 설전에 먹을김치에는 갈치를 넣고 설쇤후 먹을 김치는 달인 멸치젓을 넣는다.
물김치는 무를 꽁지째 깨끗이 씻어 소금에 굴려둔뒤 그 절인 물을 그대로 사용하여 김치를 담근다. 절인 배추 두어포기에 실고추, 무채, 당근채, 깨 등의 양념을 넣어 말아서 함께 담고 마늘과생강은 주머니에 싸서 넣는다. 물김치의 배추이파리로 쌈을 싸서 먹으면 시원하고 찡한 맛이 기가 막히지요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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