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페어플레이 정신의 회복

그래도 옛날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이 대선정국을 보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우선 권력기관이 설치지 않는 것부터가 그렇다. 옛날 같으면 이맘 때 온 국민이 권력기관의 등쌀에 몸살을앓고 있을 터다. 과거 선거 때 권력기관이 여권후보의 당선을 위해 유권자를 회유하고 협박하느라 거의 다른 일엔 손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다. 어디 권력기관뿐이었는가. 통반장은 통반장대로 학교교장이나 우체국장은 또 학교교장이나 우체국장 대로 당선에일정하게 기여를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풍토여서 안달을 하고 다니니까, 결과적으로 고달픈 것은 그들과 몸을 부딪치며 사는 우리네들이었다. 이제 그꼴은 안보아도 좋게 된 것 같다.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좋아진 것은 또 있다. 이때쯤이면 작년에 왔던 각설이로 어김없이 나타나던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관광행렬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동창회다 계다 해서 모이던 불고기집파티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여권의 분열이라는 우연의 결과에 힘입은 바 없지 않겠지만, 선거문화의 바람직한 변화로 보아도 좋을 대목이다. 동기야 어쨌든 여당으로 행세해도 좋을 당이 그에따른 관권이나 자금 등의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나선 것도 이번 대선에 희망을 걸게 한다. 대통령의 공명선거 의지의 표명과 함께 어느때보다도 바른 선거가 치러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는느낌을 갖게도 하니까 말이다.

◈바른선거 치러질 가능성

한데도 선거전을 보는 우리네 마음이 흔쾌하지만은 않은 것은 웬일일까. 이리 찢어지고 저리 붙고, 적도 동지도 없고, 원칙도 주장도 없고, 도대체가 너무 어지럽다. 나는 현실 정치에서 이념이니 철학을 찾을만큼 고루하지는 않다. 권력을 좇아 이합집산하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권력의속성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유권자들인 국민이 지켜보는 앞인만큼 최소한의 품위와 예의는 있어야 하리라. 그러나 지금 정치인들이 하고 있는 행태는 그렇지가 않다. 예컨대 멀쩡하게 대중 앞에서서 할 말 다하는 상대방 후보를 가리켜 치매에 걸렸느니 회의석상에서 죽은 국회의원을 찾았다느니 하고 비방하는 따위, 국민을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로 알지 않고서 과연 할 수 있는 소리인가. 당을 대변한다면서 어마어마한 숫자까지 동원, 누가 누구의 아내를 통해 누구의 아내에게 얼마를 전달했다고 그럴듯하게 말했다가 이내 취소하거나 근거도 없이 감만 가지고 어느당이 어느 당한테 돈을 받고 팔려갔다 라고 헛소문을 내는 따위도 마찬가지이다. 법도 국민의 눈도 두렵지 않다는 선거전을 보며 우리들은 불안하다. 마치 서투른 선수들이 진흙탕 속에서 심판을 무시한 채 공은 차지 않고 상대방 정강이만 까고 있는 축구시합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쪽이 덜하고 더하고도 없으니까 더 답답하다. 축구의 황제로 불리던 펠레가 한 국제경기에서상대팀의 반칙에 중상을 입고 들것에 실려 나온 일이 있다. 왜 상대방과 맞서 거친 경기를 하지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저는 수억 전세계 어린이들의 우상입니다. 제가 같이반칙을 해서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어떻게 알며 축구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의연한 자세 아쉬워

"저는 이나라의 앞날을 떠맡을 일꾼입니다. 상대가 있는 말 없는 말로 헐뜯는다고 저까지 같이대들어 물고 뜯으면 국민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무리 상대가 야비하고 추악한 말로비방하고 음해하더라도 이렇게 의연히 말해주는 후보가 있다면 이번 선거가 얼마나 즐거운 잔치속에서 치러지랴. 비록 정치인들이 보다 나은 입지를 찾아 갈팡질팡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도말이다.

〈신경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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