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부끄러운 '문화민족' 자긍심

한·영 수교 2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양국 문화교류 행사의 하나로 지난 5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극장에서 치러졌던 안동 하회탈 별신굿 탈놀이공연은 대단한 성공작 이었다.극장을 빈틈없이 메운 유료 입장객들의 환호와 찬사가 넘쳐났고, 다음날 현지 언론들은 동양문화의 신비로움과 하회 탈놀이의 우수한 극적 가치를 극찬하는 기사를 앞다퉈 보도, '문화민족'이라는 자긍심에 가슴 뿌듯했다.

그러나 그같은 기분은 다음날 귀국길에 하루 머물렀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참담하게 깨어져버렸다.

현지 면세점을 찾았을때 갑자기 들어닥친 20여명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유명하다는 독일산 주방용식칼을 서로 많이 사겠다고 아우성 이었다. 진열대에 놓인 자그마치 1백30달러나 하는 식칼 세트80여개가 순식간에 동이 났고 여분이 없다는 주인의 말에 즉시 물건을 더 주문하라고 소란을 부렸다.

그날밤 호텔 라운지에서 마주친 또다른 40대초반의 한국인관광객들은 1인당 6백달러를 주고 입장했다는 현지 환락가의 체험기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마구 떠들어 대고 있었다.그곳 관광지 마다 기념품을 파는 흑인 잡상인들은 한국인을 희한하게도 알아보고 "형님 사세요"하다가 거절하면 거침없이 "촌놈"이라고 했다.

여정10일 사이 현지 교민 소식지에는 '국내 달러 환율 1천원시대 돌입 외환시장 대란 예고'기사가 헤드라인으로 실렸으며, 귀국후 기자가 처음 받아본 신문에는 '지난 여름 한철 여행수지적자10억달러'라는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나와 있었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심리적 공황상태마저 느껴지는 현시점에 정말 이래도 되는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는 우리의 해외관광실태였다.

〈안동·鄭敬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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