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전 11시의 주부

"오 나만의 시간!"

'안녕하세요, 귀하의 전화번호를 눌러주시면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평일 오전 11시, 주부를 찾아 전화를 걸면 정겨운 목소리 대신 전화자동응답기의 음성메시지를들을 각오를 해야한다.

남편과 자녀들의 출근.등교 뒷바라지가 끝나고 어지러운 집안팎을 정리하고 난 이 시간대의 주부들은 비로소 자유로워진 '나만의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분주한 출근길(?)에 나선다.출근이라니, 취업여성의 얘기인 것 같지만 전업주부중에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바깥나들이를나선다. 요즘 주부들은 가정과 친인척을 돌보는 정내기보다 자기개발에 더 큰 열정을 보인다고나할까.

집을 나선 중산층 주부들이 찾는 곳은 문화강좌나 소모임.건강클럽이 대부분이며, 봉사활동에 나서는 비율은 비교적 저조하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아파트촌 수영장에는 오전 내내 수영장을 찾는 엄마들로 붐비고,각종 문화센터나 여성 소모임에는 부지런한 주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오전시간이야말로 전업주부만의 시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귀가시간이 다가오는 오후보다 마음편하게 자신의 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인주씨(49.대구시 수성구 수성동)와 기문자씨(대구시 남구 봉덕동)는 매주 수요일, 일찍 집안정리를 대충 끝내고, 삼성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오색한지공예반에서 만난다.

기씨는 한지공예반에서 배운 솜씨로 손수 패물상자.오곡주머니.한복상자.혼수함.반짇고리 등을 만들어 자녀 혼사때 사용하여 흡족한 결혼식을 치렀고, 최씨는 못쓰는 주스박스나 피자박스를 자르고 붙여서 메모꽂이도 만들고 벽걸이도 만든다. 아들과 딸을 다 출가시킨 기씨는 금요일과 화요일 오전11시에는 단전호흡을 배우고 있다. 최씨는 연말에 쓰임새가 많을 선물포장법도 배우고, 더늙기전에 메이크업도 배워볼 생각이다. 강좌가 끝나면 인근에서 장을 봐서 귀가길을 재촉한다.14일 오전11시 대구여성의 전화에 20~30대의 젊은 주부 대여섯명이 들이닥친다. TV바로보기 회원인 권정숙 조윤숙씨 등이다. 인기리에 방영되는 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를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지나치게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이 담겨있지는 않은지, 여성비하 시각은 없는지, 지금은 모니터하는 단계이고 차츰 강도를 높여 방송에도 시청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주부 백온자씨(경산시 옥산지구)는 예전에는 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40대 여성들이많았으나 요즘은 갓난애일때 업고 다니며 기술교육을 받고 결혼과 함께 접어둔 처녀적 꿈의 화려한 재출발을 기대하는 30대들이 많아졌다고 들려준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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