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백화점 뒷길인 공평동 중앙초등학교 네거리에서 구 데레사 소비센터일대 야시골목으로 통하는 길은 청소년들과 연인들의 거리이다. 영화 '접속'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으로 삽입, 순식간에최고 인기팝송으로 자리매김한 사라 본의 '러브 콘체르토'가 흐르는 거리 한켠에 꽃파는 아저씨'신(申)군'의 생활터가 있다. 중앙초등학교 사거리에 자리잡은 공평약국 앞 꽃가게 주인 신군.사실 그는 이제 신군이 아니다. 지난 봄에 웨딩마치를 올려 40대 노총각의 딱지를 뗀 어엿한 새신랑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신군으로 통한다. 본명은 신철씨(46).
이 동네 리어카꾼들의 기강을 잡는 군기대장 떡볶이아줌마는 어려운 일이나 몸으로 때워야하는일이 있으면 연신 '신군아~'를 불러대지만 그는 내일 모레면 오십 밑자리(?) 인데도 싫은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이미 이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과 세월이 깊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뭐가아쉬운지, 뭐가 필요한지 신군이 처억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이 동네의 모 미용실에서 불이 났다. 두꺼비집에서 불꽃이 팍팍 일어나는데도 출동한 소방서에서 불을 보고 있었다. 두꺼비집을 깨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말과 함께 소방서에서 손을 못쓰고 있는새 어디선가 우리의 신군이 나타났다. 인근 상가의 지하실에 가서 사다리를 구해오더니 두꺼비집이 들어있는 곳의 유리를 깨고 소화기를 뿜어댔다. 고맙게도 불길은 잡혔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공평동 일대로 대형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로드(Road)백화점인 꽃가게 앞에서 '신군'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에게 오래된 미용실 주인이 직접 이이야기를 들려주어야한다며 직접 전하고 갔다.
그 신군이 지난 3월 마지막 일요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신군의 웨딩마치가 울려퍼지던 그날, 공평동 일대의 로드 백화점은 일제히 철시를 했다. 결혼시간(오후1시)이 다가오자 이 일대에서 장사하는 노점상들의 얼굴들이 하나둘 궁전예식장으로 모여들었다.
동네 리어카꾼들의 대모격인 욕쟁이 떡볶이 아줌마-예쁜 얼굴에 도대체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가크고 욕을 곧장 내뱉지만 그는 이동네 궂은일을 앞장서서 해결해주는 여걸이다. 남편의 봉제인형공장이 어려워지자 팔 걷어붙이고 금곡삼계탕앞에서 노점 인형상을 차린 곰아줌마, 곱상하고 양순한 바나나아저씨, 주인 얼굴만큼이나 인물좋은 과일을 수레 가득 싣고 나오는 한동이네 아저씨아줌마, 남에게 뒤질세라 새벽 일찍 아침을 여는 커피 아줌마, 말수는 적으나 손은 열심히 놀려대는 구두닦이 아저씨, 늘 성시를 이루는 액세서리 총각, 돌짜리 아이를 들쳐업고 연중 무휴로 출근을 하는 테이프 장사 부부 등 모두가 빠른 걸음으로 차례차례 식장으로 들어섰다. 한나절 철시를하고 그들이 지닌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고 모습을 가다듬어 예식장에 모인 그들."하루하루 열심히 벌어 그날 그날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 황금같은 일요일을, 그들의 그 중요한 삶의 터전을 밀쳐둔채 한 이웃을 축하하기 위해 이처럼 성장까지 하며 달려온 그뜨거운 인간애를 보면서, 참으로 감동스러웠고 보석같은 이웃을 두어서 행복했다"는 윤덕자씨(공평약국)는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력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물이 특출난 것도 아닌 그저 투박하고 볼품없는, 곰같은 40대의 인정스런 노총각을 위해 베풀어지는 노점상들이야말로 보석같은이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대구의 수레꽃가게 1호인 신군은 결혼전에 어부생활도 하고 산전수전 겪지않은 일이 없다. 어느날 돈벌러 서울에 갔더니 꽃수레에서 꽃을 파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워낙 꽃을 좋아하는지라 저거다 싶었다.
대구에 내려와 이 동네 터줏대감으로 마음씨 좋은 공평약국 앞에 양해를 구했다. 꽃을 좋아하는약국사람들이 흔쾌히 승낙했다. 이날부터 해진 파카 한벌로 몇년째 겨울을 날만큼 자신을 위해서는 한푼도 쉽게 쓰지 않으면서 집안의 착한 기둥이고, 약국집 손자 손녀들에게 꽃이며 인형을 아낌없이 사주는 그 인정스런 꽃아저씨 신군은 바람이 모질게 부는 날이 아니면 그의 생활터전을지킨다. 그래서 조그마한 집도 한칸 장만했다.
"그저 꽃이 좋아요. 비오는 날 꽃을 사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요. 살아있는 꽃을 마구잡이로 만지고 깎아달라고 그러면 사지 말라고 그래요"
건너편에 꽃수레가 하나 더 생겨 속상해하는 착한 아내를 다독이며 신혼재미에 젖어사는 그는 바람불어 공치는 날이 아니면 보석같은 이웃들과 함께 공평동 네거리를 지키며 오늘도 꽃에 묻혀살며, 남편상을 당해 49재를 드리고 있는 열합아주머니가 힘을 추스려 다시 로드백화점에 얼굴을내밀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얼마전에 남편을 간경화로 여읜 열합아줌마는 "아프고 난뒤 병원에는 원도 한도 없이 모시고 다녔지만 함께 있어준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49재 기간동안 장사를 쉬고 있는 참이다.
이곳에서 34년을 산 윤약사는 "한두집씩 점포로 바뀌더니 조용하던 주택가가 어느 사이엔가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상가로 변해버렸다"며 꽃아저씨와 이웃 노점상들이 나누는 인정을 들여다보노라면 "지금 우리의 굶주림은 빵이 아니고 사랑이다"라는 테레사 수녀의 유지를 그대로 실천하고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들려준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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