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개발도상국의 외채상환 불능으로 인한 국제금융위기가 본격화된 80년대 이전까지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지원을 가장 많이받은 나라다.
영국은 지난 56년, 64-65년, 67년, 76-77년에 IMF자금을 융통해갔으며 이와 별도의 국제융자도얻었다.
IMF가 활동하기 시작한 지난 47년부터 79년까지 영국은 1백25억SDR(특별인출권)의 IMF 자금을받아 이 기간중 제공된 IMF 여신의 약 40%%를 차지했다.
이 기간중 미국이 58억SDR의 여신을 받아 영국 다음으로 많은 금융지원을 받은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이 때의 상황은 개발 도상국이 주대상인 오늘날과는 차이가 많다.
IMF의 여신은 그 배경이 어떻든 국제수지와 외환 위기가 발생한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이 가장큰 비중을 차지해와 영국이 한 동안 IMF 금융지원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당시 영국 경제의 실상을 말해준다.
사실 영국은 구제금융으로도 경제 활력 회복에 실패해 그렇게도 회피해오던 파운드화의 평가 절하를 49년과 67년, 76년 등 세차례나 거듭해야했다.
한 나라 경제의 실력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통화의 가치가 이렇게 떨어지기만 한 원인은 서서히,그러나 끝없이 쇠락해가던 영국의 국력과 산업 경쟁력 저하에 있다.
국내 총생산 증가율은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80년대 중반 몇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뒤쳐졌으며노동생산성 역시 80년대 중반 이후에야 차이가 좁혀졌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국 제조업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되찾기 힘들어졌다는 우려가 나올만큼 쇠퇴해갔다.
전후 계속된 영국 경제의 취약성은 56년 수에즈운하 파동, 70년대초 원유 파동등 외부적 충격이있을 때 마다 이를 흡수하지 못하고 위기를 발생시켰다.
'영국병', '유럽의 환자'라는 말을 낳을 만큼 퇴보를 거듭했던 영국의 경제상황은 큰 흐름으로 보아 마거릿 대처 여사가 보수당을 이끌고 집권, 새 경제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80년대 초 까지계속된다.
대처는 고용보다는 인플레에 신경을 썼으며 전후 수십년간 영국 경제정책의 기본목표였던 완전고용, 사회복지의 원칙을 버리고 자유경쟁체제의 증진, 정부역할 및 공공지출 축소, 노조 규제로 이른바 '영국병'에 대처하겠다고 나섰다.
한마디로 모든 정부정책의 지향점을 자유로운 기업활동의 권장과 지원에 두겠다는 것이다.영국 경제정책의 굴레로 작용해온 기본 지향점을 모두 벗어던진 대처의 경제 노선은 국영업체 민영화, 공공주택 사유화 등으로 구체화됐다.
대처는 빈부 격차를 확대시키고 잠깐의 거품 경기만을 야기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한다.그러나 그가 정체와 후퇴를 거듭하던 영국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은 사실이며 다만 경제의구조적인 약점을 극복하는데 못미쳤을 뿐이다.
영국은 결국 90년대초 또다시 파운드화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유럽통화체제에서 탈퇴해 경제를 지켜야했다.
IMF의 구제금융은 급한 불을 끌 시간 여유를 주고 국제 통화체제의 붕괴를 막는 수단은 됐으나영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여전히 영국인들의 과제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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