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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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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지켜보던 어느 학생 하나가 자살을 시도했다. 내게 열심히 배움을 구하면서 대학 졸업생답지 않은 응석을 떨던 녀석이었다. 우리 삶의 진면목에 근원적 황당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겉보기가 유달리 말쑥하고 성격이 명랑해서 얼핏 낙천주의자처럼 보이던 학생이었다. 중환자실에 발가벗겨져 누워있는 그는 벌써 숨이 넘어간 것처럼 창백했고, 손발이 묶이고 이름모를 의료장치에 얽혀 어지러운 모습은 그의 발랄한 이미지와 참담한 대조를 이루었다.유서는 없었지만, 간호중인 친지나 친구들을 통해서 삶을 마감하려 했던 그의 심사를 짐작할 수있었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진학을 준비하던 신학생이었는데 신학적 배움의 체제와 신앙적 삶의 내용, 개인의 종교적 열정과 우리 종교의 실상, 그리고 도덕적 경건의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깊은 고뇌와 좌절을 거듭했다고 한다. 유난한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신앙의 이념을 생활속에구체화시켜 내지 못하고 조금씩 타락할 수밖에 없는 생활의 전망을 미리 끔찍스러워했다는 말도들린다.

깨끗함을 추구하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세상은 깨끗하기만 한 사람이 살곳은 못된다. 문제는 깨끗해지려는 정신과 태도의 집요함이며, 그것은 늘 지혜롭고 힘있게 더러움과 대적하는 삶의 현장 속에서만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순수를 폐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결벽이나 도덕주의로는 소위 '생활정치'의 일꾼이 될 수 없다. 안쓰러운 도덕주의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실로써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다.그런가 하면,향락주의의 갖가지 장치와 도구가 우리 사회의 곳곳을 휘어감고 있다. 여러가지 도덕주의의 양심수가 되어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향락주의의 전도사가 되어 향유할 삶이 모자란다고불평하는 자들도 적지않다. 도덕과 경건을 결심하는 각성한 개인들도 그 구조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전화방, 카바레, 룸살롱, 티켓다방, 스탠드바, 러브호텔, 노래방, 단란주점, 퇴폐이발소, 터키탕 등은 이미 그 이름조차 상스럽지 않고, 수많은 향락매체가 지역과 세대에 관계없이 범람하고 있다. 각종의 지표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세계 수위권의 우리 과소비풍조와 졸부의식도 이를 부추기는 중요한 瘟堧 되고 있다. 향락주의 풍조는 국민 개개인의 도덕성으로 돌리기에 앞서 경제지상주의의 기치 아래 개발독재의 근대화가 그 이면에서 서식시켜온 '뒤풀이문화'의파행과 연계시켜서 따지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내가 재직한 학교의 여러 화장실 안에는 총학생회에서 제작 배포한 표어가 어지러이 붙어 있는데그중에서도 '우리의 아름다움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는것이 문득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 삶의 경건은 넘어지지 않으려는 조심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일어나려는 집요한 지향성에서 제 모습을 얻는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불확실한 만큼 성숙이 아쉽고 어느때보다도 삶의 절제와 조율이 필요한 시대다. 두리뭉실한 타협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와 복잡 속을 온몸으로 지나치면서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양보하지 않는 집요한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정신없는 향락주의는 물론이지만 정신만 남아있는 도덕주의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전주한일신학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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