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종주국을 자부하며 최고의 물질문명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 그 속에서의 가정, 교육, 식생활 패턴 등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 전통적인 가치관의 혼돈속에 달라져가고 있는 미국의 새로운 모습을 현지취재를 통해 시리즈로 싣는다.
미국의 공항에서는 아이를 바구니에 담은 젊은 엄마나 아빠의 모습을 흔히 볼수 있다. 워낙 땅덩이가 넓은 나라라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생후 1년도 안된 아기를 비행기에 태울 수밖에 없다.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아기에게 정답게 말을 거는 아빠 엄마의 모습은 '행복한 가정'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미국사회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무너진 가정'의 현실을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와 아이들이 둘러앉아 칠면조를 먹는 것은 점점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 되고있다. 깨어진 가족, 사라져가는 가정의 가치, 방황하는 아이들…. 이것이 미국의 현주소이자 최대고민거리다.
뉴욕지하철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광고판에서 미국가정의 현실을 엿볼수 있다.
'1-800-Divorce(이혼)'. 아라비아숫자와 알파벳을 혼용하고 있는 미국의 전화다이얼방식을 응용한무료이혼상담전화 안내광고로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가 내붙인 것이다. 신용카드로도 비용을 지불할수 있다는 안내문까지 덧붙인 이런류의 광고는 주차장, 대로변, 신문광고등 어디서나 볼수 있다.미국의 결혼한 부부 10쌍중 4쌍이 헤어질 정도로 이혼율이 높아 이혼소송 수요도 그만큼 폭주하기 때문.
미국에 이민을 갔거나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도대체 정상가정을 보기 힘든 미국사회에서 자신조차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고 한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남편과 함께 유학생활 3년째접어든 최형란씨는 "진짜 가정이 어떤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한다.
그녀의 이웃을 보자. 앞집에는 이혼한 흑인 여성 혼자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고 있고, 뒷집에는 독신여성인 집주인과 미혼남성인 세입자가 함께 살고 있다. 옆집에 같이 사는 할머니 두분은할일이 없어서인지 자꾸 창문으로 자신을 훔쳐보는것 같고, 건너편집에는 동성연애자들이 살고 있어 영 기분이 언짢단다.
서울 주한미공보원의 레베카 브라운 부문정관(副文政官)은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미국가정은 이제 전체 인구의 20%%에 불과하다"며 한국과 다른 미국 가정을 보고 놀라지 말라고귀띔했다. 자녀가 있는 독신부모,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 심지어 별관계없는 성인남녀나 은퇴자들이 동거하는 경우도 이제 가정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전혀 이해할수 없는 미국사회만의 새로운 '가정'의 개념이라 할수 있다.
재즈로 유명한 남부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에서 60대 노부부인 프레드 팔룸보와 노마 집을 방문했다. 이들은 이혼 한번 하지 않고 노년까지 함께 보내고 있는 자신들을 '잘 보존된 골동품'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얼마전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고양이 '비너스'가 죽어 가슴아파하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는 두딸과 아들이 있지만 모두 출가했고, 아직도 건강한 아버지(86)는 간호사인 여자친구와 따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미국인들은 가정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데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It's not of my business) 미국인 특유의 개인주의때문일까.시카고 부근 스프링필드 외곽의 한 농장에서 만난 데이비드 헨드릭슨은 "형에게 애가 셋 있는데모두 엄마가 다르다"며 "이혼하고 혼자 살거나 남남끼리 같이 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천연스레 말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동성연애자는 미국 가정의 위상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다. 할리우드영화의 주요소재로 애용될만큼 동성연애자는 식당이나 직장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띈다. 오히려 게이(gay)가 식당 종업원일 경우 세심하게 서비스를 더 잘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동성연애자가 많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그곳의 에이즈재단에서 만난 조세프 페라는 "10여년전보다 동성연애자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현재 미국사회에서 무시할수 없는 존재로떠오르고 있다"며 동성연애자들의 사회적 역할론을 주장했다. 동성연애자 등을 대상으로 에이즈퇴치 예방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 재단이 추산한 샌프란시스코의 동성연애자수는 약6만명. 지역 전체인구의 약8%%를 차지한다.
이미 하와이 지방법원은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을 허용(대법원 심의를 앞두고 있음)했고, 최근 뉴저지주가 동성연애자 커플도 정상부부처럼 아이를 입양할수 있도록 허가했을 정도다.뉴저지주에서 법정소송을 통해 어렵게 두살바기 사내아이 아담과 한살바기 양녀를 입양하는데 성공한 게이 커플 존 홀든과 마이클 갈루치오. 아이들이 비정상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우려에"다른 부모와 꼭같이 엄마 아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딱잘라 말했다.
워싱턴 전국입양위원회의 윌리엄 피어스회장은 "지난 20년간 수천명의 게이들이 개별적으로 아이를 입양했으며,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게이 커플들이 게이 이전의 결혼생활에서 낳은 자식들을 함께 키우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처럼 추락하는 가정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루이지애나주가 최초로 정한 계약결혼(Covenant Marriage)법에 따라 결혼한 다이안 라이스와 르네 쉬넬. '남편과 아내로 죽을때까지 함께 살겠다는 계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이 부부는 "둘다 이혼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부의 결속력을 보다 강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말하는 계약결혼과는 전혀 다른 이 결혼은 이혼이 까다로워 배우자가 투옥.간통과 같은 극한 상황에 처하거나 부부문제에 대한 장기간의 상담을 받은 경우, 2년동안 별거했을때만 이혼이가능하다.
좋은 아버지와 남편이 되겠다고 서약하는 기독교 남성들의 '약속 이행자'(Promise Keepers)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여성의 자유를 축소한다는 일부 여성단체들의 반발도 있지만, 이들은 성서에나와있는 신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이혼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결혼과 약속의 문화보다 이혼과 편리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미국. 사회의 기본축인 가정이 흔들리고 있는 미국사회는 자연의 순리를 외면한 인간성 상실의 결과인지, 아니면 인간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다음 세대의 '예고편'인지 아리송하다.
〈美國서 金英修기자〉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