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협산업 이재하사장의 고민-"근로자 가슴에 어떻게 못박나..."

성서공단에서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 '삼협산업'과 벤처기업 '대아진공'을 경영하는 이재하사장(46). 그의 책상서랍엔 보름이 넘도록 결재하지 못한 서류가 하나 있다. 결재는 커녕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다. 감원 대상자 명단이 들어있는 회사 구조조정안.

"이름만 보면 그 가족들의 얼굴이 어른거릴 것 같아 자꾸 미루고 있습니다. 아무리 역할이 적은근로자라 해도 식구인데 가슴에 못 박는 일을 어떻게..." 이사장은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이사장은 지난달 초 한라그룹 부도 소식을 듣고 위기를 직감했다. 6백명의 사원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벌였다. 내용은 회사경쟁력 강화 방안. 위기상황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위한것이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이사장 자신을 먼저 가다듬도록 만들어 버렸다. 허리띠 졸라매기는물론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면 자신의 재산까지 담보로 내놓겠다는 직원이 80%%를 넘었기 때문.나머지는 담보로 내놓을 부동산이 없어서 그럴 뿐 마음은 한결 같았다.

곧이어 닥친 IMF의 찬바람. '중소기업을 하기 때문에' 더욱 '죄없이 억울하게'당할 수밖에 없는형편. 지난해 매출액 6백50억원에서 올해 목표는 10%% 이상 낮춰 잡았다. 고정설비를 제외한 크고작은 경비를 줄이고 사무실은 물론 사장실의 난로까지 껐다. 그러나 마침내 감원까지 포함한 구조조정안이 올라온 것이다.

포항에서 고등학교 미술교사를 하다 지난81년 아내를 포함해 5명으로 기업을 시작한지 16년. 집한칸에 소파는 물론 변변한 가구조차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어온 길을 되돌아 봐도 '내몸 하나'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근로자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했다. "새벽에 일어나 통근버스 타고 저녁까지 일한죄밖에 없는 사람들, 그것도 일부는 생활하기도 힘든 월급만 받으면서도 삶의 터전이랍시고 다녀온 사람들에게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참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리가 부러진 직원의 병문안을 갔었다. 그 아내가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던 남편과 이렇게라도 함께 있으니 너무 좋다"고 오히려 즐거워하던 모습을 이사장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저녁마다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새벽 3시면 베개를 적신 식은땀 한기에 놀라 잠을 깬다고도 했다."이번 기회에 불필요한 인력을 정리하는 등 저의를 드러내는 기업주도 상당수 있다고 들었습니다.그러나 기업인이 순수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기업도 결국은 어려움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三思百忍''기본을 철저히 하자'. 그 사무실 푯말 아래서 주름살을 펴지 못하는 이사장의 결재서류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서랍속에 팽개쳐져 있을 것 같았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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