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상경해서 서울에서 내리 30년째 살고 있는 대구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가까이 사귀는 친구들 대부분은 서울 사람들도 대구 사람들도 아닌, 전라도사람들이다. 군대살이 할때 맺은 한 전라도 친구와의 인연이 근 30년동안 선택적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이 인연 덕분에 나는 타향인 전주를 내 고향처럼 사랑했고, 광주사태 전후해서는 그쪽사람들 말 몽둥이에 경상도 사람을 대표해서 조리돌림을 당해도 많이 당한 특이한 경험의 소유자다.
하지만 10년전 내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서울에서 경북의대병원까지 따라 내려간 것은 물론 장지인 군위군 우보면까지 동행한 친구들은 모두 전라도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따뜻하다. 그들은 내고향 군위의 척박한 농토를 보고 혀를 차면서, 이런데서 대체 뭘 먹고 살았냐, 초년고생 뒈지게했겠구나, 하고 위로했다. 나는 그러니까 콩이파리 먹는다고 욕하지 말아라, 음식 같잖게 해처먹는다고 경상도 사람 욕하지 말아라 하고 응수했다. 상호 이해는 오고가는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는 그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 인연 덕분에 그들의 빛과 어둠에 대한 정보에 다소간 접근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의 특질에 관한 한 자락 생각이 있다.나는 전자의 특질을 '직진', 후자의 특질을 '해찰'로 정의하고는 한다. 애들 심부름 시켜 보면 좌고우면하는 법없이 오로지 심부름에만 마음 쓰는 아이가 있고, 동무들 놀이하는 데도 기웃거리고지나가는 개도 더러 집적거리는 해찰궂은 아이가 있다.
직진하는 버릇은 옆 돌아볼 나위가 없는 구차한 살림 형편에서, 해찰 더러 부리는 버릇은 농경시대의 여유로움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추측한다. 농경시대 빈부는 산업시대로 진입하면서 역전되는데, 이 때 직진은 곧 강경한 권력이 되고 해찰은 순후한 아름다움이 된 것이 아닐것인지. 나는 해찰궂은 대구 사람인 모양이다. 위대한 전라도 시인 서정주를 보라. 그는 해찰의 고수다.
애인이여/ 너를 만날 약속을 이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잎사귀 하나/ 가벼이 생각하면서,/ 너와 나 사이/ 절간을 짓더라도 가벼이 한눈파는/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지어 놓고 가려 한다('가벼이' 전문)
정보도 없이 무성한 소리소문만 믿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내게는 김대중의 빛과 그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정보가 있다. 나는 인간의 현상에 대한 관심과 독서만이이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대구 내려갈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파악해낸 그의 모습을 공정하게 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본 경험이 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학습한대로 작대기질을 해대고는 했다. 그가 쓴 글 한 꼭지라도 읽어 보고 그러는 것이냐, 하고 내가 물으면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의 글을 왜 읽느냐고 또 작대기질을 했다. 대구 내려가면,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선생님은잘 계셔,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관급 정보와 정치 마타도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노태우 돈 받았다고 김대중을 작대기질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전두환의 미소 칭송했다고 대시인 서정주를 작대기질했다. 시선이, 사람 때리는 작대기가 많이 굽어 있다. 우리 시대의 상처다.
한 작가의 작업성과를 두고 '그는 구부러지기도 하지만 우리 문학에 도도히 흐르는 장강'이라고한 평론가가 있다. 틀린 표현이다. 동진 사람 조의(曺豈頁)는 '만리장강이 안 구부러질 수 있더냐(萬里長江那能不彎)'고 묻는다. 프랑스 시인 랭보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성이여 계절이여', 하고 노래한다. 흠없는 사람이 없고 상처없는 영혼은 없다. 구부러진 강이 다 장강인 것은아니지만 안 구부러진 만리장강은 없다.
굽은 작대기는 어떻게 펴는가? 이제 대답할 때가 되었다.
반대쪽으로, 안 부러질 만큼 구부리면 된다.
〈소설가·번역가〉
'김영민의 세상읽기'에 이어 새해부터 6개월간(격주 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를 연재합니다.▨ 이윤기씨 약력
△성결교 신학대학 수학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 '전날의 섬', '인간의 상징' 등 역서다수 △'하늘의 문'(3부작), '뮈토스'(3부작), '햇빛과 달빛' 등 다수 △일간지플루타크 영웅전 연재 및 각종 문예지 집필중 △미국 미시간주립대 사회과학대학 연구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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