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야구인생의 분수령이 된 것은 고교시절 정동진감독님과의 만남이다.
정감독님은 현역시절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로서 명성을 날리다 은퇴한뒤 제일은행에 몸담고 있었는데 학교측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76년 모교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나는 평소 우상으로 삼던 정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게돼 뛸듯이 기뻤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오히려 야구를 그만둘뻔한 사건을 만들게 됐다.
부임후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감독님은 우리들에게 앞산 충혼탑까지 구보로 왕복할 것을 지시했다.
학교에서 앞산까지 달리기로 왕복 1시간30분만 하면 충분한 거리였다. 그런데 이런 지시를 받은주장 송진호선배는 "감독님이 처음이라 3시간 걸려도 모를 것이니 중간에서 놀고 오자"며 은근히농땡이 칠 것을 유도했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놀자는 쪽으로 흘러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씩씩한 함성과 함께 대열을 맞춰 교문을 나선 우리는 교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달리기를 멈추고골목길로 잽싸게 접어들었다. 처음엔 찜찜한 마음이었지만 오랜만에 훈련에서 해방돼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먹으며 장난을 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대봉동 골목을 휘저으며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2시간반이 지나고 있었다.우리는 주장의 지시에따라 대열을 맞춘다음 남산여고있는데서부터 전력질주해 학교까지 뛰어왔다. 도착하니 시간은 거의 3시간이 지났고 모두 땀에 흠뻑 젖은채 숨을 헐떡이는 상태여서 굳이 연기를 하지않아도 우리가 농땡이 친 것을 감독님이 알리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감독님이 "너희들 힘들지" 하시더니 "다시 한 번 갔다와라"고하는게 아닌가!나는 이때 '아차! 들켰구나'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정리.許政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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