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미국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설령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사는 여성이라도자신이 이렇게 불리는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영어로 '하우스와이프'(housewife)인 가정주부라는 말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남편에 종속돼 살림을 사는 여성을 뜻하는 남성중심적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듣기 좋게 '가정의 기관사'(domestic engineer), '취직을 못한 사람'(corporate challenged) 등의 말이 대신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상가정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요즘, '가정주부'를 자처하고 주저없이 사표를 던지는미국의 직장여성들이 늘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 뛰어들어 가족도 내팽개친채 최고 자리를향해 줄달음치던 여성들이 엄마의 사랑이 있는 포근한 집, 문제자녀가 없는 행복한 집을 만들기위해 가정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브렌다 반즈 펩시콜라 북미담당 최고경영자는 여성 최고의 연봉과 지위까지 포기하고"이제 세아이와 남편을 위해 시간을 쓸때"라며 가정복귀 선언을 해 미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새벽 3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게다가 1주일의 3분의 2는 집에도 가지 않고 밤새워 일하던 그녀는 가정을 돌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22년간 몸담아온 직장을 미련없이 떠났다.샌프란시스코의 한 식당에서 만난 캐롤 굿맨 변호사는 "반즈는 고위직 여성이라 언론에 보도될정도로 화제가 됐지만, 실제로 많은 중산층 여성들이 가정과 육아문제로 고민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있다"고 말했다.
뉴올리언스에 사는 80대의 모리슨 할머니는 "가정보다 직장생활을 선호하는 여성들이 많아 가족관계가 깨지기도 하는데 직장에 다니던 손녀 둘다 가정주부가 돼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흐뭇해했다.
이 지역에서 경제주간지 '시티 비지니스'를 발행하고 있는 캐시 핀 국장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직장여성들의 맹렬한 사회활동으로 남녀간 능력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10년전만해도 여자는 한계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직장여성이 가정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여성 스스로 가정주부의 길을 선택해도 별부담이 없다는이야기다.
주말까지 직장에 나와 근무한다는 그녀는 "지금 미국 경제는 과거와 달리 직장에 더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남녀 모두 직장과 가정생활에 균형을 맞추는 문제로 고민하고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정을 위해 직장을 포기한 여성들이 모두 만족스러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6년간 계속해오던 대학 강의를 그만둔 교육학 박사 낸시 아담스. 네살바기 막내아들벤자민이 다니는 스프링필드의 한 유아원에서 1주일에 2번씩 자원봉사를 하는 그녀를 만났다."2~3년후 다시 일하고 싶다"는 심정을 솔직히 터놓은 그녀는 집에만 있으니까 식자층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는데다 사회적으로도 가정주부를 중요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으로 돌아갈수 있는 여성들은 행복한 편에 속한다. 대다수여성들은 맞벌이를 해야 아이를 키우고 집안살림도 꾸려나갈수 있을 정도로 경제 여건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에서는 아직 여성들의 유급출산휴가가 법제화돼있지 않아 아이를 낳고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로 일터로 나가야할만큼 생계위협을 받는 여성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어딘가에 아이를 맡기고 일터로 나가야하는 여성들은 항상 불안하고 아이에게 죄를 짓는기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직장에 다니는 루이스 젠슨은 "얼마전 자신이 돌보던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19세의 영국인 보모 루이스 우드워드사건을 보며 많은 엄마들이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자신도 아기를 가지려다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지역마다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창업교육은큰 도움이 되고 있다.
뉴올리언스의 '여성 창업센터'에서 만난 라벤 킬고어 국장은 "여성들이 큰돈 들이지 않고 집에서 짭짤한 수입을 올릴수 있는 창업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며 한해 수강생이 계속 늘어 지금은1천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의집 아이들을 맡아 돌보거나 전화주문일 등은 별다른 기술없이 집에서 할수 있으며,약간의 기술만 익히면 수익이 높은 컴퓨터 비서직이나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보조금 청구서 작성 등의 일을 시작할수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확대하고 출퇴근시간을 자유롭게 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는 것도 직장 여성들의 가정고민을 더는데 한몫 하고 있다.
여성 스스로 평등한 사회활동을 부르짖던 과거와 달리 늘어나는 직장여성들의 가정 복귀는, 월급을 많이 받는 부인 대신 '가정주부'역을 자청하는 일부 미국 남성들만큼이나 격세지감을 느끼게한다. 〈미국서 金英修기자〉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