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공사 취직자리는 자갈논 30마지기와 바꾸지 않는다'며 잘나가던 80년대 후반까지 탄차가 철길을 메우고 지붕은 물론 사람들의 모습까지 까맸다던 태백(太白).
검은색 껍질이 옅어지고 '한밝'이라는 속살을 내보이며 변모하기 시작한지도 5~6년이건만 부질없이 끝난 전쟁처럼 생채기는 온 도시에 널려있다.
산중턱마다 메우다만 갱과 탄광촌 사람들이 떠난 집, 석탄회사 사옥으로 쓰던 아파트는 빈집으로버려져 요사한 귀기(鬼氣)를 느끼게 한다.햇살이 따스한 빈터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이들은아직도 석탄물이 들어 검댕이 같은 돌쪼가리를 던지며 깔깔거린다.
국내 최고(最高)지대에 있는 추전역(855m)의 하루는 탄광도시 태백의 신화가 끝났음을 알려준다.객차는 상·하행 단 한번씩이고 화물열차도 뜸하다.
"한창때 만해도 석탄을 실은 열차가 하루에 50여회이상 다녔으나 이제는 10회에도 못미치고 그나마 대부분은 시멘트를 실은 열차지요"부역장 권중대씨의 말끝에는 씁쓸함과 추억이 묻어있다.그런 추억을 뒤로 하고 태백산(太白山)에 오른다.
지리산까지 넘어야할 긴 산행의 출발지점으로 잡았다.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왕검을 모신곳.경상도를 꿰뚫는 낙동강과 잊혀져버린 경제기적을 이룬 한강, 그리고 가파른 등성이를 넘어 동해바다로 몰아쳐가는 오십천. 이 모두가 여기를 정점으로 하고 있다.
세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들의 발원지를 가슴앓이 하며 간직한 곳.경상도의 지붕 끝마루에서 우직한 사람들의 서러움과 한스러움, 영욕의 세월을 산자락 마다 묻어두고,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그 모습으로 서있다.
김강산 태백문화원 사무국장의 태백산 예찬은 남다르다.
"태백산은 곧 백두산입니다. 백두산 천지와 태백산 천황, 삼지연과 삼지, 주봉을 둘러싼 아홉개의봉우리등 지명이 비슷한 것만도 40여곳이나 됩니다. 남북이 갈린 지금 태백산은 우리나라의 정신적인 지주지요"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던 시절.이런 어려움이 있었을까.
부끄러운 건 사람인데 산이 더 부끄러워 세상을 하얀 안개천지로 만든다.
태백산에 오르면 먼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아름드리 주목을 만난다.안개와 눈속에서도 여전히 푸른 태백산 주목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백산 주목군락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늠름하고 하늘높이 자란다. 조금만 오르면 장군단-천제단. 온 산이 하얗고 강풍과눈보라가 날려도 이곳을 찾아 제사드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징-, 징-, 징-'.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며 귓속을 파고 드는 징소리는 박수의 주문과 무녀의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과 어울려 묘한 신비를 자아낸다. 영원히 벗지 못할 속세의 때가 많이 묻은 탓일까. 흰 산정에서만난 무녀는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 그러나 산에서 내려오면 '별유인간 비천지'.중심가는 여느 도시못지 않게 북적거린다.
태백은 신라시대 이후 오랫동안 경상도였다.
봉화·영주·풍기등 경북 북부지역 주민들과 같은 산줄기를 모태로 삼아 기대고 살아왔고 탄광을따라 많이 이주해 정착한 까닭으로 말투가 낯설지 않다.
'~가와, ~소와와 ~니껴'등 강원도와 경상도의 어투가 섞이고 한국전쟁때 정감록을 신봉한 관서지방 피난민들까지 많이 정착해 다양한 언어들이 섞여있다. 토박이는 5%%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가외지인. 태백 사람들은 끝나가는 탄광시대를 아쉬움과 회한으로 바라보며 다시금 태어날 관광 태백시를 기다린다.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5년까지 1조8백여억원이 투자돼 스키장, 골프장등대규모 위락단지가 들어서고 옆동네 고한에 카지노 시설이 들어서면 국내 최고의 고원관광휴양도시가 될 것이며 도로와 철도가 함께 있어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장점이 있다"는게 배일환 태백시 문화계장의 자랑이다. "12만이나 되던 인구가 반으로 줄었지만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할2천년대에는 새로운 태백시가 될 것으로 믿는다"며 희망에 차있는 한 식당주인의 말에서 세월따라 변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의 일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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