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권력이동에 관한 명상

오늘이 5일, 스무날만 지나면 김대중대통령당선자의 새 정부가 들어선다. 우리나라 정권교체의 역사를 훑어보면 어느 한번도 만족과 축복속에서 바통을 넘겨주고 넘겨받지 못했다. 정권을 넘겨주는 측에서는 향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정치적 보복을 두려워하거나 재임중의 실책이 사법처리로이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게 사실이다.

역사는 돌고 돌아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장충체육관에서 손뼉치기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씨는 친구이자 후계자인 후임대통령의 명에 의해 백담사 유배길에 올랐었다. 그리고 "믿어 주세요"란 허구와 가식으로 국민을 우롱했던 노태우씨도 자신이 손들어 준 김영삼대통령에 의해 결국 감옥으로 갔다.이번 25일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거행되는 김대중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 광경을 미리 머리속에떠올려 본다. 사면은 되었어도 전직예우가 없어진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던 전두환씨도 뒤늦게 참석하겠단 뜻을 밝혔으니 전직 대통령 자리에 모습을 보일 것이다. 입이 무거운 최규하씨와보통사람 노태우씨도 아마 참석할것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우리의 관심은 물러나는 김영삼대통령에게 쏠려있다. 오늘의 경제난국의 현실적 책임자이며 장본인이자 '환란의 책임은 모두 내것'이라고 말한 그가 어떤 모습으로 단상을 지키고 있을지 그게궁금하다. 그도 역시 선배 대통령이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불안한 마음은 떨쳐 버리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돌고 돌기 때문이다.

남아공, 춤추며 정권교체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검은나라 남아공의 권력이동은 춤으로 시작하여 춤으로 끝난다. 정권을물려주는 쪽은 홀가분해서 즐겁고 권력을 이양받는 쪽은 뿌듯해서 기쁘다. 그래서 모두가 춤을춘다.

1994년 5월 임기 5년의 대통령에 취임한 넬슨 만델라는 최근 잔여임기 1년 3개월을 남겨두고ANC(아프리카 민족회의) 총재직을 부통령인 타보 음베키에게 넘겨 주었다. 상징적 대통령직만갖게된 만델라는 "정권을 쥐게 되면 예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기 때문에 권력남용의유혹을 반드시 받게 된다"고 경고하고 "훌륭한 지도자는 이 유혹을 뿌리칠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난 새 지도자 음베키는 "만델라 대통령이 해온 일들은 우리 민족이 누릴행복으로 보상될 것"이라고 말하고 "지금 신고 있는 신발외에 다른 어떤 신발도 바꿔 신지 않을것"이란 은유법으로 권력남용의 유혹은 배격할 뜻을 비쳤다.

남아공의 정권교체는 후임이 전직을 잡아넣는 악순환의 연속인 우리의 정치풍토와는 너무나 다른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권력남용 유혹 뿌리쳐야

김대통령의 실정은 인사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그는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치열한 정열도 남달랐고 투쟁정신 또한 모진 풍랑을 이겨낼만치 강했지만 미국 언론들의 지적처럼 대통령감으로서재목이 모자랐던 것은 분명한것 같다.

그것은 김대중당선자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취임 첫 조각에서나 고위공직자들의 적재적소배치에 있어서 되도록이면 전임인 김영삼대통령의 전철을 밟지않고 닮지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점이 바로 그러하다.

옛날에도 임금이 소선(小善)만을 즐기고 진현(眞賢)을 얻지 못하면 어진 신하를 얻고도 나라는 위망(危亡)하게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임금이 칭찬의 소리만 좋아하고 참소하는 말을 싫어하면사신(邪臣)은 무리를 지어 충신을 모함하게 되어 결국 임금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된다는것이다.

대통령취임식전에서 물러나는 대통령이 신변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는 이번으로 마지막이었으면한다. 김대중당선자는 만델라의 충고를 내것으로 받아들여 예스맨도 물리치고 권력남용의 유혹도과감하게 뿌리쳐 5년후에는 남아공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며 권력의 바통을 후임대통령에게 넘겨줄 수 있는 진짜 큰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구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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