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화의 고향-레마겐의 다리

2차대전 종반기 미군과 독일군이 전략요충지인 라인강의 한 다리를 두고 점령과 방어의 치열한공방전이 전개된 전쟁 실화를 주제로 그린 영화가 바로 '레마겐의 다리'이다.

1968년 제작되고 이듬해 출시된 이 미국영화(감독 존 게일러민)는 전장의 와중에 생사를 뛰어 넘는 미군 허맨 필중위(조지 서갈분)와 안젤로 중사(벤 가자라분)의 끈끈한 전우애를 감명깊게 그렸다.

또 이 다리의 방어를 위한 독일군 사령관 크뤠겔소령(로버트 보근분)이 어려운 전세속에서도 고군분투한 점이 돋보였다.

전쟁영화이면서도 장면 곳곳에 따뜻한 인간미가 스며들게 했으며 이로 인해 되레 전쟁의 참혹한실상을 따가운 시선으로 고발한 효과를 낳게 했다.

1944년 말 연합군은 독일에 진격하고 히틀러는 라인강에 유일하게 성한채로 남아 있는 레마겐 다리의 파괴를 명령한다.

미군은 이 다리의 확보를 위해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작전을 계속한다.

독일군측은 이 다리를 방어할 대응 수단을 거의 갖추지 못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다리를 파괴하기위해 폭발물을 설치한다.

그러나 다리는 독일군의 계획대로 부서지지 않아 책임자인 크뤠젤소령은 나치 친위대에 의해 총살을 당한다.

미군이 일부 손상된 이 다리를 수리해 진격작전을 완료할 10일뒤 결국 다리는 무너진다.현재 독일의 쾰른과 코블렌츠 중간의 라인강변에 있는 레마겐의 다리는 과거 미군측 점령지였던서안(西岸)쪽에 일부분의 잔해만 남아 전쟁의 상흔을 말해 주고 있다.

두 철도궤도를 갖춘 이 다리는 지난 1916년부터 1918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1차대전중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건설됐는데 원래는 독일의 루덴도르프원수의 이름을 따 루덴도르프 다리로도 불렸다.

다리의 길이는 3백25m였고 외양과 건축적인 관점에서 아주 인상적이라 주목받았다.다리 동안(東岸)에 1백35m 높이의 '에르펠렐 라이'라 불리는 산아래 3백83m 길이의 긴 터널이 연결돼 있다.

이 터널은 2차대전 레마겐 전투중 독일군이 수세에 몰리자 피신한 근거지였으며 피난 주민들의대피소가 되기도 했는데 영화에서 당시의 이러한 긴박한 장면이 그대로 재현됐다.큰 활 모양인 이 다리는 강 양측에서 교대(橋臺)로 받침하고 있고 두개의 교각및 서안에 두개의수문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다리 양측에 우뚝 솟아 있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5층 높이의 시커먼 브리지 타워는 전쟁동안 철벽 요새 역할을 수행했다.

이 브리지 타워 요새는 레마겐 다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전투를 보다 치열하게 했으며 이 바람에 더욱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다리의 동안에는 크뤠겔소령의 독일군이, 서안에는 허맨중위의 미군이 각기 진을 치고 있었다.미군의 허맨중위의 돌격조가 레마겐 다리위로 진격하자 독일군은 브리지타워요새를 중심으로 비오는듯한 공격을 퍼부었다.

또 다리 파괴를 위한 폭약 설치 완료후 미처 다리위에서 철수하지 못한 크뤠겔소령의 퇴각을 둘러싸고 미군측에서도 불뿜는 공격을 감행했다.

1945년 3월7일 레마겐다리를 점령한 미군은 다리를 이용, 계속 작전을 수행했으며 다리는 불과 10일뒤인 3월17일 무너졌다.

독일군의 폭약을 이용한 폭파기도가 실패한뒤 다리는 이날 과부하로 인한 예상치 못한 붕괴사고로 무너졌다. 이사고로 미군 28명이 희생됐다.

다리는 독일군이 예상한 3월7일 폭파되지 않았다. 영화상 다리폭파에 실패한 독일의 크뤠겔소령은본부에 지원을 요청하려고 급하게 달려간다.

그러나 이미 본부를 접수한 나치 친위대들은 그에게 레마겐다리의 상황을 해명하도록 요구하며그를 '레마겐의 반역자'로 몰아 총살시킨다.

실제 독일에서는 당시 이 레마겐 다리문제로 인해 5명의 관련 장교들이 처형당했다.레마겐 다리 전투에서 철벽요새로 꾸며진 타워브리지 2개중 서안의 타워브리지는 현재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되새겨 보는 평화기념관으로 변모해 있다.

당시의 적대감을 평화로 승화시켜 보자는 높은 뜻에 따라 만들어진 평화기념관이라고 한다.평화기념관을 상징하듯 타워브리지의 2개 탑위 한쪽에는 미국 성조기가 다른 쪽에는 독일 국기가사이좋게 게양돼 바람에 나란히 흔들리고 있다.

이 타워브리지는 전쟁중 독일의 검문소및 임시 작전 사령부 역할도 했다.

기념관 안에는 2차대전 전쟁관련 각종 전시물이 진열돼 있다.

이 기념관은 처음 레마겐 시장 한스 피터 쿠에르텐씨에 의해 구상되고 만들어졌다.그는 또 지난 1976년 파괴된 다리밑 라인강위에 방치된 레마겐다리의 잔해들을 수습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 다리의 돌등 파편물을 하나씩 비닐봉지에 넣고 레마겐 유물이란 시장명의의 증명을 넣어 일반에 판매해 크게 성공했다는 것이다.

다리 잔해도 치우고 기금도 축적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아 1978년 당시 10만 마르크의 돈을모았다.

그뒤 이 돈을 토대로 1980년 3월7일 레마겐 다리 전투 35주년 기념식에 평화기념관을 개관했다는이야기다.

이 기념관의 비디오는 다리의 과거를 그대로 담고 있는데 2차대전당시 이 다리를 둘러싸고 전투를 치렀던 독일·미국·영국·벨기에군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 평화에 대한 참다운 의미를 모든사람에게 되새기게 하고 있다.

〈파리·李東杰특파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