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백산 등반길

소백산(小白山).

백두에서 묘향-금강-설악-태백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백두대간의 끝자락으로 갈라져 경상도와 전라·충청도를 경계지으며 달리는 소백산맥의 좌장이다.일찌기 퇴계가 소백유산록(小白遊山錄)을 남겼고 예언가 남사고는 후세에 난을 피할 10승지중 으뜸을 소백을 낀 풍기로 잡았음은 소백의 이름이 남다름을 말해준다.

선비가 많았던 경상도에서는 비로봉·국망봉·연화봉·도솔봉등 1천M가 넘는 험한 산들로 이뤄진 이 소백산을 넘어야만 뜻을 펼칠 수가 있었다.

산은 이를 기대고 사는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지만 넘어야하는 이들에겐 아득하기만 한 벽일뿐. 입신출세를 위해 북으로 가던 선비들과 낙향하는 선비들은 눈앞을 가로막는 이 장중함앞에서또 얼마나 좌절했을 것인가·한숨과 눈물을 뿌렸을 그 길이다. 선비의 고장(영주)을 지나며 마주치는 대재(竹嶺)·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의 아흔 아홉구비다.

요즘 대재는 속살을 발갛게 드러내 보이며 몸살을 앓고 있다.

4천5백여미터에 이르는 죽령터널 공사때문이다.

대구-춘천간 고속국도중 가장 난공사 구간으로 터널공사비만 1천7백억원·공사장의 한 직원은 "터널 공사가 끝나는 2002년이면 죽령으로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져 자연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가슴이 뚫려지는 재의 아픔과 천팔백년을 넘게 살아온 재의 삶이 한 순간에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속으로 잠겨짐을 의미한다.

"터널이 완공되면 이 고개도 과거속으로 흘러가겠지요. 경제난국으로 힘든때에 마음까지 어수선합니다"지난 5년간 대재 중턱에서 휴게실을 운영해 왔다는 점촌아저씨의 눈은 지나가는 트럭의 뒤꽁무니만 하릴없이 좇을 뿐이다. 소백산에 오른다.

신기술의 상징인 통신중계소를 지나면 하늘의 일만 헤아리는 천문대가 우뚝한 제2연화봉(1357·3M)을 만난다.

어떻게 이 곳에 천문대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구름사이에 떠있는 산만 보아도, 수백KM를 서로어깨동무로 뻗어내린 다정함이면, 하늘의 일은 하늘에게 맡기면 될것을. 위·아래로 매섭게 불어치는 눈바람은 속살까지 저미며 '내려가라' 한다.

여기서 제1연화봉(1394·4m)를 지나 주봉인 비로봉(1439·5m)까지는 3시간여·어렵지는 않은 길이지만 저자의 온갖 잡념까지 함께 지고 가려니 발걸음만 뱅뱅거린다. 평지를 다 갉아먹으면 산에말뚝을 박고, 바다를 메워야 만족하는 인간들은 길마다 철책을 치고, 나뭇가지 끝마다 표지를 남긴다. 'xx산악회' '자연보호' '산불예방'·비로봉. 정상에 서면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을 만난다.

태백산에 잇닿은 소백산/ 구비구비 백리길 구름사이에 솟았네/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하늘이만든 형국 억척일세(小白山連太白山/위리百里揷雲間/分明획盡東南界/地設天成鬼破간). 정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정하다.

처음만나도 늘상 곁에 있던 지인처럼 잔술을 권하고, 아무나 붙잡고 산자랑이다.영주에서, 제천에서, 단양에서··. 경상·충청·강원도가 섞여 왁자지껄하다.예천에서 왔다는 산아저씨는 "사람들이 산만같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며 "경제위기나 어지러운 정치판이 산에 오면 다 사라진다"며 막끓인 라면을 권한다.

숨조차 가누기 힘들어하는 초행자에게 신선봉, 형제봉, 월악산, 문수봉, 도솔봉을 가리키며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지리산 가는 봉우리를 설명한다.

손가락끝을 따라 날아가면 백두에 닿을까·사면을 둘러보아도 산 넘으면 또 산이고 그 사이는 구름만 가득하다.

사람들은 겨우 강물자락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산에서는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산이 말을 걸어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산을 내려오면 오를때 벗어놓은 잡념들을 다시 걸머지고 가야하지만 도시로, 도시로 끌어내려지면서 소백의 부름을 듣는다.

수억년 세월속에서도 못다한, 사는 얘기를 듣는다.

특별취재반 鄭知和

徐琮徹

金重基

鄭又容 기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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