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새 대통령에 세가지 제언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현재의 상황을 6·25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진단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 경제를 재도약시키는 일이 새 정부의 제일 큰 과제임을 천명하였다. 그리고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발전시켜야 함을 강조했다. 오늘의 경제위기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부터 비롯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그리고 시장경제의 왜곡된 운영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는 점에서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을 통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국정의 기본 방향으로 잡은 것은 일단을 옳다고 본다. 그러나 국난치유를 위한 구체적 처방에어떠한 약(정책)들을 투입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의 관계를 보면, 이른바 선진국들은 전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조화롭게 발전시킨 나라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추구한다고 모두순조로운 결실을 얻는 것은 아니어서 전세계 1백90여개 국가중 20개국 정도만이 이에 해당되고나머지는 시장경제발전을 추구하자니 민주주의가 안되고 민주주의를 추구하자니 시장경제가 안되거나 아니면 둘 다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음으로,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은 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특수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일반적인 이론이나 남의 경험만 가지고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는 얘기하면서도 막상 이처럼 갑자기 국가파산을 우려할 정도에 이르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하는 점도 하나의 단적인 예이다. 그리고 언제 돌출적인 행태로 나올지 모르는 북한 요소도 한국의 특수한 성격을 더욱 가중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매우 크다. 여기에는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기대를 하게 되는 면도 있다. 취임식에 임하는 김대통령의 얼굴이 매우 어두워 보였던 것도 국민들의 엄청난 기대에 비해 헤쳐가야 할 항로가 매우 어렵게 판단되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새 대통령에게 앞으로의 국정운영과 관련하여 세 가지만 제언을 하고자 한다. 이 소박한제언은 과거의 대통령들의 공통된 행태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김대통령 자신도잘 알고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되나 굳이 제언으로 거론하는 이유는 일단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같은 우(愚)를 범하게 할 소지가 꽤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재임기간 동안 역사에 길이 남는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의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면 그러한 시도가 결코 나쁠 것도 없다. 문제는 여건이 안되는 것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경우에 있다. 5년이라는 기간은 사실 별로 긴 시간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남기기보다는 후임자가 무엇을 이룰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큰 업적이 될 수 있다. 5년후에 우리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문턱에만 가 있어도 김대통령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두번째는 자만하지 않는 일이다. 권력의 속성상 대통령 주변에는 늘 교언영색(巧言令色)의 무리들이 꼬이기 마련이어서 은연중에 대통령으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자만은 판단력을흐리게 만들고 편견과 독단, 그리고 아집을 배태하게 할 것이다. 국가지도자는 정부정책에 대한비판적인 의견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정책이란 어차피 선택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을 다 기쁘게 할 수는 없다. 여론은 변덕스러운 것이며, 표변할 뿐만 아니라 지배적인 여론이 항상 옳은것도 아니다. 정책의 일관성이나 개혁의 추진을 위해서는 대중을 굳이 외면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대중에 영합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유세희 (한양대교수·정치외교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