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눈치정보학

요즘 대학마다 현실에 잘 적용되는 실용학과를 앞다투어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 해방후부터 우리에게 가장 축적된 기술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학과로 만든다면 '눈치정보학'이라는 것쯤 될 것이다.

본질적인 신념이나 신뢰 따위란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무척 장애가 된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눈치나 속임수, 간교함 등이 출세술 1호로 자리잡게 된데는 무엇의 영향이고 누구의 덕분이라는 것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 경제성장의 최대 걸림돌은 미진한 기술개발이 아니라 정신(신념)의 부재라고 꼬집었다지만 공연한 휜소리다. 눈치나속임수는 곳곳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질 않은가.

IMF시대 전후의 TV만 봐도 얼마나 순발력있는 눈치편성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가. 드라마마다 멋쟁이 재벌 2세가 등장하고 화려한 의상이 화면을 채우더니 어느날 느닷없이 병들거나멀리 떠나버리고 가난뱅이들이 주인공 행세를 시작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서민들의 애환에 동참해온 듯 능청이 자연스럽다.

그만한 변환술이야 어딘들 없을소냐.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재활용품 업소들도 중고물품을손질하는 김에 제조연월일까지 고쳐버리고, 실력있는 기술자는 자동차의 주행미터기도 그냥 두질않는다. 또한 집안에 작은 수도관 하나 설치해도 설비업자들의 눈속임은 자신의 기술수준을 능가한다.

어저께 한국에 사는 일본경제인 초청모임에서 한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한국인들은 신뢰가 돈이라는 것을 몰라요, 누가 한국인을 파트너로 삼겠어요?" IMF만 오지 않았어도 우리의 눈치정보학이 사계(斯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실로 안타깝다. 눈치를 키우세요. 눈치가 곧돈입니다,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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