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문화전쟁시대 대비해야

문화예술계가 위축되고 거품도 걷히면서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출판사·도매상·서점들이 경제난국으로 잇달아 무너지고, 잡지들이 휴·폐간되거나 몸집 줄이기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화랑들은 아예 문을 닫거나 개점휴업의 잠속에 빠져들고, 해외의 유명한 연주자·연주단체들의 공연과 무게있는 무대들이 무더기로 취소됐다.

경제사정이 나빠지기만 하면 문화예술계는 가장 먼저 타격을 입어왔다. 가장 더디게 회복되는 길을 예외없이 걸어오기도 했다. IMF 시대는 유감스럽게도 문화예술을 그 길로 빠르게 뒷걸음치게하고 있다. 이제 문화는 '사치'로까지 치부되는가 하면, 그 여파로 우리는 삶의 질 높이기를 아예도외시하는 '슬픈 현실'을 맞이했다. 전업작가·예술가들은 설 땅이 좁아졌을 뿐 아니라 생계의위협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 삶의 인프라라 할 수 있는 문화가 살기 어렵다고 해서 변두리나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상은경계해야 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경제는 '몸통'이고, 문화는 그 속에 깃들이는 '정신'이지 '깃털'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가 생활에 여유를 가져다준다면 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는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문화에 대한 투자는 그 회임기간이 길므로 정치논리나 경제논리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구체적인 성과가 느리게 나타나고, 그 성과마저 확연하게 눈이 띄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화는 시간의 침식을 가장 미미하게 받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경주 불국사·석굴암을 비롯한 각종 문화유산들은 그런 사실을 잘 말해준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국도 문화의식이 깔리지 않은 경제활동 때문에 오게 됐는지도 모른다. 얼마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교수는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가 너무 약해 금융위기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한 바도 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총성도 없는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영화를 비롯한 각종 문화산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화재의 상품화로 관광산업에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기도 하다. 문화산업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순수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도만만치가 않다.

우리도 위대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미처 못가진 것은 외국에서 과감히 받아들여 우리 것이면서도 세계인이 좋아할 수 있는 문화인 '한국형 세계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당장 2000년문화 비전 사업과 2002년 월드컵 문화축전 등의 이벤트를 앞두고 있어 고부가가치의 문화상품 개발을 위한 거국적 투자가 시급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문화는 대표적인 고부가가치산업이라고 강조하고 '21세기는 경제와 문화의 시대'라고 했다. 문화산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경제난국이 계속되는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과연 얼마만큼 투자될지 궁금하다. 5백억원을 출판업계에 지원토록 한 김대통령의조치는 시의적절했다.

문화는 분명 고부가가치의 생산물이 될 수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여전히 '경제 살리기=나라 살리기' 구조 속에서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문화정책의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이위기라고 본다. 이럴 때 정부의 적재적소적인 투자는 한층더 빛날 것이며, 새로운 문화 발전의 전환점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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