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장회리(長淮里)에는 그래도 사람이 산다. 문전옥답을 잃고 실향 아닌 실향민 신세로 고향땅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했지만 물속에 고향땅을 잠겨두고 고생했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남한강 유역을 맴도는 이들의 한은 질기디 질기다.
충북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늑골처럼 뻗어나온 소백산맥의 서쪽 자락에 자리잡은 산과 물의 고장. 구담봉, 옥순봉등 단양팔경이 총총히 이어지고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절경을 이루며소백산맥을 넘지 못한 남한강을 따라 시립해 있다. 유유히 충주댐으로 흘러드는 비취빛 강물과장회나루가 코앞에 보이는 남한강가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장회리. 고작 세 가구가 텃밭을 일구며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동네중 하나다.
구인사(救仁寺)가 있는 영춘면에서 태어나 4살때부터 장회리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우태옥씨(69).고작 세 가구라 자리를 물려줄 사람도 없어 이장노릇을 해온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집뒤 텃밭에서 일하던 우씨와 수인사를 끝내고 마루에 걸터앉자마자 대뜸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나만 얘기해보라고 한다. 갑작스런 질문이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우씨의 말이 날카롭게 귀에 와박힌다.
"수몰민 이주당시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당국에서 희망사항이 뭐냐고 묻더군. 그때 난 그랬지, 장회리 이름석자만 유지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야.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어. 이렇게 고향땅 지키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
일곱남매 전부 타관에 떠나보내고 10년째 당뇨로 고생하는 아내와 단 두 식구가 장회리를 지키며살아가는 우씨의 말이 이어진다.
"당시 가옥보상비만해도 번듯한 집 세 채를 살 수 있었어. 돈 욕심이 있었으면 진작 떠났지. 그런데 말이야. 살다보니 돈이 전부가 아니더라 말이지. 자기 뿌리를 버리고 간다는 것이 영 내키지않더라구. 그래서 눌러 앉았지. 두 식구 먹을만치 밭갈아 먹고 살아"
그렇게나마 장회리를 지켜온 우씨는 3년전 옥순봉과 이어지는 마을 앞봉우리에 난 산불을 꺼기위해 혼자 야밤에 산에 올랐다 굴러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그 후유증인지 청력도 약해져 보청기가 없으면 대화가 도통 이어지지 않는다.
육쪽마늘로 유명한 단양. 석회암지대의 점토질 중성토양에서 나는 한지형(寒地形)육쪽마늘은 예로부터 최고로 쳤다. 육쪽마늘이 알토란처럼 수확되던 장회리 너른 옥답이 물에 잠긴지도 햇수로벌써 13년째. 지난 85년 충주댐이 완공되기전만해도 장회리 주민들은 모두 70여가구였다. 그해 여름 마을사람들은 식솔들을 앞세워 신단양으로, 제천으로,더러 서울로 뿔뿔이 흩어졌다.장회리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충주댐 건설로 단양읍, 매포읍과 3개면 26개리 1백67만여평이 물속에 잠겼다. 이주계획에 따라 허문 건물만도 3천8백70동에 이르고 가구수로는 모두 2천3백14세대다. 그중 도전리에 새로 조성한 신단양으로 옮긴 가구수는 1천8백세대. 나머지는 타관땅으로 떠났다.
해마다 8월20일이면 그때 봇짐을 쌌던 주민들이 장회리에 모여든다. 고향사람끼리 모여 마늘농사짓던 옛날을 추억하며 회포를 풀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주당시 세대주 30명이 벌써 불귀의 객이되고 말았다. 더러는 죽어서라도 고향땅에 묻히기 위해 장회리 양지바른 언덕에 미리 터를 잡아가묘를 쓴 사람도 있다.
80년대후반 부동산 투기붐이 일때 우태옥씨는 또 한번 부자가 될 기회가 있었다. 수몰피해를 면한 논밭이 꽤 있어 외지인들이 몇 억원에 팔라고 했지만 끝내 팔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월악산국립공원지구에 묶여 이제는 증개축도 힘들만큼 마음고생이 심해 보이지만 우씨는 별 내색을 않는다.
이제는 장회리 자료관이 된 우씨의 집. 장회리를 추억케하는 온갖 자료들을 안채와 마당,집앞까지촘촘히 붙여놓고 세워두었다. 특이한 것은 문패가 둘이다. 일곱남매의 이름까지 모두 적은 문패와큼직한 바위문패다.
'우주계 지구성 동양 대한민국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우태옥'. 보란듯이 큼직한 바위에새겨놓은 이 문패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향 장회리의 존재를 지켜내려는 우씨의 집념이 담겨있다. 평생을 지켜온 고향을 떠날 수 없는 한 노인의 한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날 저물어 하루 묵고 가라며 소매를 잡는 우씨의 인심이 남한강처럼 깊고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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