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지 만들기 '억척 외길'명맥만…

추풍령이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이면 미끄러진다하여 옛 영남 선비들은 꼭 이 곳을 과거길로 택했다던가. 소백산맥 남쪽자락 천혜의 비경, 기호(畿湖)-영남의 길목, 문경새재(조령).객을 맞는 새재의 물과 바람소리는 변함없건만, 새재 밑 동네에는 한 평생 우리 것을 고집스레지켜온 '장인'도 있고, 거대한 문명의 이기에 능욕당한 '자연'도 있었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웅창). 20여 가구의 동네에는 6~7년전만 해도 한지공장이 3곳이나 몰려 있었다. 지금은 모두 문을 닫고, 장대식씨(73) 부부만 한지 원료인 닥나무 껍질을 삶아 말린뒤 도매상에 넘기고 있다. 열아홉살때 강제징용을 피하려고 일본인이 운영하던 군용지공장에 들어간게 장씨의 종이와의 첫인연. "평생 한지 뜨는 일 말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젠 공장이 없어 나무껍질만 벗기고 있으니…" 말끝을 흐리는 얼굴엔 한과 시름이 서려 있었다.가은읍 상괴1리 이원우씨(70)도 지난해까지 40년동안 한지공장을 가동하다 수익성이 없어 현재쓰러져 가는 건물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있다. 30년전 문경에만 20여곳의 한지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문을 닫고, 요즘은 닥나무 껍질을 삶는 사람들조차 드물다.

그래도 한지의 전통을 잇는 외길 인생은 남아 있었다. 농암면 내서1리, 김삼식씨(56). 김씨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탓에 이름 석 자 제대로 못쓴다. 물려 받은 땅한평 없었다. 열 한살 되던 해 친척이 운영하던 한지공장에 발을 디딘 것이 '한지인생 45년'의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한지인생에는 15년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일제때 동학사상을 받아들인 어머니가 우리 것에 대한 사랑과 지조, 기개 정신을 불어넣어 줬기 때문이다.그의 집앞에는 한지 재료인 닥나무와 껍질이 수북하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터로 나간다. 마당뒷편 열 평 남짓한 허름한 건물이 공장이다. "제 생활터전이자, 삶입니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들어온 값싼 중국산 닥나무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남들은 비용을 줄이려고 수입 펄프를 섞은 뒤한지를 떠내지만 김씨는 그렇지 않다. 우리땅의 닥나무를 써야 제대로 된 한지가 나온다는게 그의 지론. 6~7년전 폐수처리시설 의무화로 그나마 문경에 남아있던 한지공장 10여곳이 모두 문을닫을 때도 그는 끄떡없었다. 닥나무 껍질의 외피를 없앨 때 사용하는 가성소다를 거의 쓰지 않고,직접 칼날로 벗겨내기 때문. 덕분에 시설비 부담은 덜지만 한지를 만드는데는 남들보다 2-3배의시간이 더 걸린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곤 부인 박금자씨(52)뿐.

"한지의 질은 닥나무껍질의 외피를 제대로 벗기느냐, 펄프를 섞느냐, 한지를 어떻게 떠내느냐에달렸다"고 비결을 말했다. 그는 "30년전 한지와 닥나무껍질을 일본에 수출할 시절엔 형편이 좋았다"며 "그때 마련한 논 열댓마지기가 전 재산"이라고 했다.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있는 그는 내심자식들 중 누군가가 한지인생의 대를 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코 강요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한지기술을 전수할 수 있다면 더이상 여한이 없다"는 그의 눈빛에서 우리 것에 대한 강한 집념이 엿보였다.

문경새재를 승용차로 10분 남짓 못미친 마성면 신현리. 강변을 따라 깎아질러 병풍을 친 듯 자태를 드러내는 진남교반(鎭南橋畔)이 있다. 문경팔경이자, 경북팔경중 첫째로 꼽히는 경승지. 강 양안으로 울창한 수목과 기암괴석의 층암절벽이고, 굽이치는 영강과 벚나무 특히 봄이면 진달래와철쭉이 조화를 이뤄 절경이다.

그러나 이젠 진남교반의 자태를 만끽하긴 힘들다. 지난해 여름 점촌~문경간 4차선 확장 포장공사로 허리가 잘린 것. 지금은 기암절벽이 동강난 채 강사이로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 받침대만 우뚝솟아 있다. 올해 진남교반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고, 그 위로 아치형 터널을 만든다. 마성면민들은 진남교반 훼손을 반대하며 2년여 동안 줄기찬 싸움을 벌였지만 '나랏님'들의 사업을 막기엔역부족이었다. 주민 박동순씨(44·여)는 "기존의 국도를 확장하더라도 충분했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 큰 애기 손질에 놀아난다/문경새재 넘어갈 제 구비야 눈물이 난다"

영남 옛 선비들이 문경새재 밑자락의 한지 떠는 장인을 만나 흐뭇하겠지만, 동강난 진남교반의허리를 보고는 깊은 시름에 잠길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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