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인문정신을 되살리자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히스테리식 불안의 안개가 짙게 깔려있다. 시대는 우리에게 냉철한 이성과판단을 요구하지만 정신적 공황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정리해고라는 끔찍한 말이 거리낌없이 유통되고 있으며, 어떤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를 사상 최대의 실업 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선진국에 진입할 것이라는 백일몽이 언제 다시 후진국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경악스러운 악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급한 불을 끄는데 급급하여 IMF의 불씨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만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IMF 관리 체제의 결과처럼 보이는 곳에서 오히려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문학의 침체이다. 대통령마저 경제 대통령이기를 자임할 정도로 모든 신경과 관심이 경제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경제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고여겨지는 인문학은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 사회가 총체적 경쟁 체제로 변하면 할수록 삶의 의미와 바람직한 미래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논하는 인문학은 더욱 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여겨진다.

짧은 기간동안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책은 지독하게 안 읽는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 성인의 1년 독서량이 9.7권밖에 안되며 10명중 2명 정도는 단 1권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도시라고 자처하는 대구의 경우도 별반 나을게없다. '책 읽는 대구를 만들자'는 취지로 제정된 '대구도서관 진흥위원회'에 관한 조례는 이미 작년 12월에 통과되었지만, 이 위원회는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은 유령위원회로 남아 있다. 현재 시정을 담당하고 있는 문희갑 시장이 경제시장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책과 인문학의 홀대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 대학에서 취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전문'대학으로 탈바꿈을 해야 한다는 요청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IMF 시대에 대학은 20대의 백수건달만을 양산한다든가 또는 대학교 4학년은 취업할 기회가 없는 사(死)학년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가 나돌고 있으니 이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만 일리 있을 뿐이지 진리는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오히려 사회의 방향과 규범을 세울 수 있는 인문 정신을홀대하고 경제적 성공만을 절대화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위기의 결과처럼보이는 것이 사실은 위기의 원인인 셈이다.

그런데 인문 정신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사회의 밑그림을 그려준다. 우리사회는 산업화및 현대화의 구호 아래 지나치게 외국을 모방하고 또 너무 빨리 달려와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문화적 면역성과 탄력성을 상실하였다. 우리가 또 다시 IMF극복이라는 명목으로 한때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공동체 정신마저 회의한다면, 우리는 더욱 더 자본주의적 시장논리에 예속되어세계의 주변으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인문정신은 사회적 갈등을 중화시킬수 있는문화적 완충시대를 만든다. 현재의 위기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획일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초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를 나왔다는 건 영원히변경될 수 없는 신분계급의 작위를 얻는 것이지 않은가? 사회적 성공을 잣대로 대학을 서열화하고 획일화하는 우리의 교육체제는 다양한 도전을 인지하지 못하는 문화적 불감증과 무능력만을양산하였다. 인문정신의 실종, 그것이 바로 위기의 원인이라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실로 간단하다. 현실을 떠난 꿈에서 깨어나 현실에 방향을 설정하고 의미를 심어주는 인문 정신을 회복하는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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