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촌지

예로부터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러 가는 제자는 조금의 음식물을 준비하는 것이 바른 태도였다.공자도 "마른 고기포 한묶음의 예물을 가지고 온 자를 가르쳐 주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른바 속수의 예(束脩之禮)를 언급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전통은 우리에게도 온전히 내려와 사제간의 인정을 도탑게 하였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마른고기 한묶음(속수)의 예의는 온갖 사회부패와 맞물려 자취를 감추고 그자리에 흉칙한 얼굴의 '촌지'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이들 학교에(혹은 유치원에) 보낼 때부터부모들은 스승의 정을 느끼긴 커녕 촌지 공포증에 시달리게 된다.

촌지 때문에 고생한 학부모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촌지는 사실상 뇌물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수 있다. 촌지를 주고 안 주고의 차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의 표정에서 뚜렷이 드러난다는것이다. 일견 촌지를 받는 교사도 문제지만 주는 학부모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것은사태의 본말을 흐리게 할 뿐이다. 학부모로서는 몇(십)만원의 돈 때문에 자칫 아이의 장래까지 그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무서운 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가는 것이 재화이동의 원칙이다.

촌지의 뇌물이기에 때에 따라 엄청나게 몸집이 부풀어진다. 며칠전 서울대 치대 교수임용비리 재판에서도, 교수들은 1억에 가까운 돈을 받은 것을 단지 관행이라며 '큰 촌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관행이라면 적발되지 않은 거래는 훨씬 많았다는 뜻이고 그것이 수년동안 이어져왔음을 실토하는 셈이다. 그러나 어디에고 실형(實刑)을 받았다거나 추징금을 냈다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그것이 촌지세계의 편리함이다. 그래서 이런 격언이 생겨났다. '안들키면 뇌물이고 들키면 관행'이라는.

〈소설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