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치가 어지러워지면 세상의 평가 기준이 혼돈되거나 전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가운데도둑이 가당찮게 의적(義賊)으로 미화되거나 민초(民草)들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외국의 전설적인 의적들은 말할 것도 없고 홍길동.임꺽정.일지매 등 이른바 우리나라의 의적들이 문학작품을 통해 서민들의 정서 속에 감동적인 인물로 살아있음을 본다. 5공시절 지배층의 집만 골라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혀 세간에 무성한 화제를 낳았던 대도(大盜) 조세형(趙世衡.54)이 만 15년만에 또다시 세상에 나타나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15년 형기를 채우고 보호감호 10년에 앞서 재심을 청구, 22일 법정에 나타난 그는 변호인을 통해 "82년 당시 훔친 물건은 수백억원대에 이르고 피해자들이 훨씬 많은데도 권세가들이 수사를 축소 발표했으며, 희귀보석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83년 그가 기소될 당시 검찰은 피해자 11명에 도난품의 시가총액은 5억여원이라고 밝혔으며, 이듬해 2심재판 도중 관련 증인들의 진술을 통해 피해액은 10억7천여만원으로 늘어났었다. 그러나 이날 그의 변호인 엄상익(嚴相益)변호사는 훔친 보석류만도 마대자루2개 분량이며, 피해자는 정.관.군.재계의 실력자들이 망라돼 있다고 폭로했다. 82년 검거돼법원 구치감에 대기하던중 탈주했다가 붙들려 청송교도소에 수감됐던 그가 이제 다시 축소된 권력의 치부를 밝히겠다고 나서 세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당시 부촌인 장충동과 한남동, 신문로 등의 고급주택에 살던 정.관계 인사, 재벌회장, 전직 중앙정보부장, 신군부 핵심인사들이 '인간 몰래 카메라'에 어떻게 잡혔을지…, 숱한 명망인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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