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제작-'여고괴담'

지난해말 워싱턴에서 만난 한 미국 교육자는 한국에서도 일본 학생들의 '이지메(집단 괴롭힘)'와 같은 현상이 문제화되고 있다는 말에 놀라워했다. 마약과 섹스, 총기 난사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공립학교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히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인에게 한국 학교의 문제가 흥미로운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폭력과 성적 비관 자살, 교사의 학생 구타와 성희롱 등 우울한 이야기들로 빛을잃어가고 있는 우리 학교. 졸업식때 눈물을 흘리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예전의 정든교정은 온데간데 없고 학교가 이제 '공포의 대상'으로까지 그려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한국 공포영화에 과감히 도전장을 낸 '여고괴담'(박기형 감독, 이미연 김규리 주연). 9년전에 자살한 여고생이 귀신으로 나타나 교정에서 의문의 살인사건들이 벌어진다는 줄거리의이 영화는 공포스릴러라기 보다는 차라리 귀신보다 더 두려운 '학교의 공포'를 신랄하게 비판한 사회고발물에 가깝다는 느낌마저 준다.

대입시를 앞둔 3학년 3반. 급훈은 '분수를 알자'. 여학생의 귀를 만지며 치근대는 남자선생님 '미친 개'는 친구를 '적'으로 규정, 학생들간의 경쟁을 부추긴다. 선생님의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체벌, 성적지상주의 등 회색빛 교정의 어두운 면이 사정없이 까발려진다.학생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는 교사 '미친 개'와 '늙은 여우'를 처단(?)하는 귀신은 바로청순한 얼굴의 수줍음 잘 타는 단발머리 소녀 세연.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를 만나 좋은 기억을 가지고 학교를 마치고 싶었어" 죽은 뒤 9년동안 학교를 떠나지 못한 이 귀신의 독백은그래도 학교에 대한 한가닥 희망을 담고 있다.

여교사가 나무에 목매 죽은 모습이나 귀신의 살인장면 등의 표현에서 어설픈 부분이 엿보이지만, 잘 짜여진 구성과 신인감독의 감각이 돋보이는 볼 만한 영화다. 마지막에 사라진 귀신이 자살한 여학생 지혜로 부활하는 결말은 구태의연한 공포영화의 도식을 보는 듯 해 다소식상하지만, 지혜가 진정한 친구를 찾아 학교를 마치는 날이 올 것도 같아 희망을 걸어보게된다.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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