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느 세무서 계장의 소신

퇴계선생이 살던 고을의 원님이었던 곽황은 "이 고을 세금징수나 부역에 있어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퇴계선생이 온 집안을 거느리고 와서 남 먼저 세금을 바치니 마을 백성이 선생의 의를 본받아 앞다퉈 내며 혹 뒤질세라 두려워해 꾸짖지 않고도 세수에 모자람이 없었다"고 했다.

지도층과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자진납세가 정의로운 납세풍토를 만든다는 좋은 본보기다. 반대로 5백여년이 지난 오늘 어느 세무서 계장이 국세를 체납하고도 지난 지방선거에는 출 마한 지역기업인에게 "세금도 안낸 사람이 무슨 돈으로 출마를 하느냐"며 출마포기를 경 고하고 꾸짖었다는 얘기는 자진납세의 풍조가 엷어진 요즘 세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례 없는 세수결함으로 초비상이 걸려있는 세무당국으로서는 세금은 안내면서 선거에는 나서는 정치 지망인사들의 고질적인 행동이 얄밉게 보일만도 했고 세금부터 내라는 경고는 당연한 꾸짖음일 수도 있었다.

동서고금 사람들은 세금내는 돈만은 유난히 아깝게 생각한다. 최대한 안내거나 적게 내기 위해 버틸대로 버티다가 도저히 피할 수 없게 되고서야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낸다. 납세의 무를 다한다는 상쾌한 긍지는 없고 언제나 눈물을 머금고 낸다는 식이다. 병역의무는 자랑스레 여기면서도 납세의무는 왠지 지갑을 털린듯 떫뜨럼하게 여기는 풍토는 세금을 정직하게 낸 사람이 그 사회속에서 우대받고 존경받는 분위기가 제대로 성숙돼있지 못한데도 그 원인이 있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의 아들이 병역을 기피하면 악착스레 따지 면서도 부도내고 국세를 떼먹거나 안낸 공직자나 정치인에게는 납세의무에 대한 시비조차 걸지 않아온 시민의식과 정치풍토 역시 문제였다.

사람의 경력이나 인생의 성패 여부를 평가할때 그 사람이 첫 직장에서부터 정년에 이르기까 지 낸 세금 신고서를 보고 판단한다고 할만큼 납세풍토가 성숙된 미국사회에서도 IRS(미국 세청)가 21C 국세정책개선을 위해 의회에 제출해 놓은 조세 정책관련 법안의 제목에는 「 협조2000」이란 표현이 붙어 있다. 그만큼 납세자의 자진납세 협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최근 세계각국의 조세정책 방향은 납세자는 재주껏 탈세하고 도망쳐 숨는 루팡이 되 고 세무당국은 셜록 홈스처럼 탈세를 쫓아 다니는 식의 소모적인 숨바꼭질 조세 행정을 지 양하고 정직을 바탕으로 한 협조적인 자진납세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최근 우리 국세청이 7월쯤부터 몇만원의 세금만 냈다 하더라도 성실한 자진납세자로 표창받은 납세자에게 도심 공용 유료주차장에는 무료주차 특혜를 주는 등 상응한 사회적 예우를 한다는 것도 그런 맥 락에서 나온 시책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세정책의 선진화된 변화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의 납세 의식이나 세 입구조에는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며칠전 끝난 소득세 신고 결과를 보면 법인세나 자영 업자 소득세는 줄고 고금리 예금에 의한 이자소득세는 배가까이 걷혀졌다. 분명 건강한 세 수증대 구조는 아니다.

금융권 이자소득세도 따져보면 월급쟁이의 근로소득세처럼 꼬박꼬박 원천징수됐기 때문에 100% 과표대로 걷힌 경우고 실제 금융권 밖의 시중 사채놀이 이자소득세는 거의가 탈루되 고 있다. 최근 근저당을 설정해놓고 이자 소득을 챙겨온 채권자에 대한 이자소득세 추적조 사를 극비리에 벌이고 있는 것도 자진납세가 미흡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일부 지도층과 좀더 많이 가진 계층들이 월급쟁이나 근로자들이 공감하고 감동 을 느낄 만큼 자진납세의 수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팔뚝 굵기에 따라 피를 뽑는다」는 프랑스의 조세속담처럼 팔뚝 굵은 일부 고소득 계층에겐 제대로 못 뽑아내 고 가느다란 월급쟁이 팔뚝에서만 더 많은 피를 뽑는 식이 되고서는 납세의 정의도 조세행 정의 형평성도 살아날 수가 없다. 그 세무서 계장의 용기와 소신은 그래서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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