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실업현장(4) 영국

93년 1월 영국의 실업자수는 3백6만2천명으로 실업률이 약 11%에 이르렀다. 마거릿 대처여사가 총리로 있던 지난 82년 9월 이후 처음이었다. 90년초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영국에선 1백4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 3년만에 88%가 증가했다. 당시 야당이던 노동당은 보수당에 대한 맹공격을 시작했고 외국 경제전문가들은 영국의 실업사태가 금세기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이로부터 4년 뒤인 97년 2월. 실업률은 6.2%로 급격히 떨어졌다. 3백만명을 넘나들던 실업자도 1백73만명으로 줄었다. 자신감을 얻은 토니 블레어 정부는 지난 4월 정부 통계에 대한신뢰도를 높이겠다며 실업통계 산정방식을 국제노동기구(ILO)방식으로 바꿨다. 종전 통계방식은 일자리가 없는데도 실업수당을 받을 자격에 미달한 사람은 실업자 산정에서 제외했다.이같은 통계방식으로 산정한 실업률은 4.9%였지만 바뀐 통계방식에 따른 실업률은 6.6%를기록했다. 그럼에도 90년초에 비하면 격세지감인 셈.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강대국들의 시샘어린 눈길을 받으면서 영국이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크게 3가지. 과감한 복지체제 개혁과 대대적인 외국기업 유치, 공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살빼기 작업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복지정책을 담은 '신사회계약'은 한마디로 '일하기 위한 복지(welfareto work)'로 요약된다. 일하기 싫은 사람에겐 복지지원을 줄인다는 것. 79년 보수당 대처총리 집권부터 시작된 복지체제 개혁은 존 메이저 총리를 거쳐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부에와서 열매를 맺고 있다. 실직했을 때 받았던 사회보장수당보다 재취업해서 얻는 봉급이 많도록 했고 근로자에게 부담이 되는 퇴직연금제도를 뜯어고쳤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구직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보장 혜택을 아예 누리지 못하도록 개혁할 방침이다.영국 정부의 해외기업 유치노력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이 영국 투자의사를 밝히자마자 영국 정부가 공장건물을 다 지어놓고 입주를 기다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같은 투자유치 노력에 힘입어 미국 일본 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업체들도 영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 규제가 일관성이 있는데다 임금이 싸고 주당 노동시간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 96년 당시 외국업체가 영국 제조업체에서 갖는 비중은 6%에 불과했지만생산의 24%, 수출의 40%, 고용의 18%를 차지했다.

정부 통제하에 있던 거대 공기업들도 민영화 이후 혹독한 살빼기를 거쳐 경쟁력을 회복했다. 만성 적자로 허덕이던 영국항공은 87년 민영화된 뒤 10년간 정부보조금을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 직원 5천명을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으로 줄인 대신 시간제 또는 계약직 사원으로 보충했다.

실업대란에 허덕이는 우리나라는 미국식 고용환경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겐평생직장이 무너지는 혹독한 시련이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어떤가. 여전히 정부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기업은 변화를 비껴갈 궁리만 하고 있다. 영국이 실업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노동자와 정부, 기업이 함께 변화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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