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우리는 문화국민?

"고것 참 실하게 생겼네"

갑작스레 들려오는 한국말에 화들짝 놀라며 나른해오는 눈을 크게 떴다. 계속되는 걸찍한농담과 함께 한무리의 한국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그날은 학교수업의 일환으로 한달정도 유럽미술관들을 순례하던 중 마지막 코스인 파리의루브르박물관에서였다. 몇시간째 미로같은 박물관을 걸어다니던 난 마침내 몰려드는 피곤을달래느라 미국인 친구 2명과 함께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방은 로마시대 나체조각상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었다. 그때 한국관광객 한명이 남자나체조각상의 중요부분을 만지며 지나갔다. 그러자 뒤따르던 일행들도 뒤질세라 그것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그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미국친구들이 경악했다. "어마, 저를 어째. 예술작품을 저렇게 마구 만지다니""지키는 사람은 어딜 갔나. 저들을 그냥 두다니"보다못한 그들은 큰소리로 "돈 터치, 플리즈 돈 터치(만지지 마세요)"라고 외쳤지만 한국관광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들이 나를 쳐다봤다. 어느 나라사람인지 아느냐는 눈빛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지었지만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제발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말조차 그들에게 건넬 수가 없었다.

어수선한 장면들이 한차례 지나가고 뒤죽박죽됐던 감정이 차츰 가라앉자 원인모를 분노가치밀어 올라왔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한때 전염병처럼 번져갔던 해외여행. 비싼 돈 들여 10여시간씩 비행해간 여행지에서 기본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관광객들이 과연 무엇을 얻어서 돌아올까. 우리는 스스로 문화국민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문화국민의 척도는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문화국민이 되기 위해 최소한 우리가 갖춰야할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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