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아주머니학생

"아이구 선생님 어떡해요. 도대체 무얼 그려야할지 모르겠어요"그녀가 내민 작은 동판위엔어린아이 주먹만한 장미꽃 한송이가 서툴게 그려져 있었다. 마흔을 훨씬 넘긴 그녀는 내 판화수업을 수강하는 아주머니학생이다.

올봄부터 내가 나가는 대학에 고졸이상이면 누구나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제 등록제가 도입됐다. 진작부터 대학이 평생교육의 장으로 지역사회에 활짝 개방된 선진외국에비하면 다소 늦은 감이야 있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 첫 시간제등록 학생들중 2명의 아주머니가 내 판화강의에 들어왔다.외국에선 입신출세가 아닌, 오직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나이를 초월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 그러한 교육풍토를 부러워했던 나에게 그 아주머니학생들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늘 그림에 대한 취미를 잃지 않았던 그들이지만 다시 공부할 용기를 가지도록 적극 떠민건대학생딸과 남편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다소 힘들어 하고어색해하는 눈치였다. 더구나 판화는 작품 제작과정이 무척 까다롭다. 때문에 난 혹 그들이힘에 겨워 도중하차해 버리지 않을까 염려도 했다. 하지만 나의 염려와는 달리 그들은 날이갈수록 열심을 내며 밤새워 작업에 몰두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작품이 생각대로 나와주지않았다고 학기를 마치며 그들은 못내 안타까워했다.

난 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품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 시작인 그들에게중요한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이다. 대학이 지역사회를 향해 문을 활짝 열지라도 우리문화풍토에서 평생교육이 정착되기란 쉽지않을 것이다.

더구나 가정에만 있던 전업주부들이 그 문을 두드리기엔 보다 큰 용기와 주변의 이해를 필요로 할것이다. 그런 까닭에 난 그 아주머니학생들에게서 젊음의 상징이었던 우리의 대학풍토가 서서히 평생교육의 장으로 열려가는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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