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동색 장대한 둥치가 비에 젖는다. 올해는 비가 많을 줄 미리 알았는지 예년보다 두세배나 많은 열매를 달고서.
히말라야시더는 가을에 꽃을 피워 찬바람 몰아치는 날 혼인을 한다. 북풍이 거세게 불고 누우런 꽃가루 회오리가 솟구치는 괴이하고 장엄한 결혼식이 지나면, 고요히 긴 팔을 뻗고 눈을 받아 새 생명을 키운다.
열매(朔果)는 다음해 가을에 다 익지만, 유월이면 벌써 큰 방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까지야 가끔씩 수액을 얻어가는 매미가 유일한 손님이나, 가을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참다람쥐 가족들이 분주히 오르내리는 것이다.
앙증스런 귀를 곧추세우고 씨앗을 꺼내 먹는 참다람쥐는 한겨울 내내 히말라야시더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앞발이 놓쳐버린 방울이 땅으로 떨어지고 무수한 파편을 흩날리며씨앗이 흩어지면, 힘겹게 겨울을 나는 텃새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히말라야시더는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다. 다람쥐며 매미며 새들이 없다면 그것은 사는게 아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세상의 모든 생명은 유전자의 지시대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히말라야시더의 경우 존재는 곧바로 사랑에 이어진다.
어쩌면 존재 자체가 사랑아닌 것은 인간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더를한번 보라. 매연에 찌들고 병들어 가지며 머리까지 잘리고, 쇠받침대에 의지해 가까스로 견디도록 만든 것이 누구인가?
그것은 이미 히말라야시더가 아니다. 새들도 없이 다람쥐도 없이 씨앗 퍼뜨릴 땅도 없이, 사랑없이 서있는 것은 나무가 아니다. 세상의 나무들이 사랑을 잃고 오로지 죽음처럼 대지를지킬 때, 과연 그때도 인간이 설 땅이 남아 있을까?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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