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읍 저동3리 내수전 마을에서 발견된 고인돌(支石墓). (사진위) 북면 현포리에서 발견된 맷돌종류의 갈판(碣石)과 울릉도에서 출토된 신라토기 2점.
울릉도서 고인돌·무문토기등 첫 발견
울릉도지역 고고학 연구에 획기적 자료가 될 고인돌(支石墓)과 성혈(性穴)의 흔적, 무문토기,갈돌판, 석봉등이 처음으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보 4월16일자 1면보도)
특히 이번 유물의 발견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울릉도 역사가 신라 지증왕(智證王) 13년(서기512년)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을 정벌한 이후부터 시작됐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을뒤엎는 계기가 돼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올 6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울릉도 문화유적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인 서울대 최몽룡 박물관장은 10일 본사기자와 만나 "현포리, 남서리 고분군일대와 저동 3리 내수전 마을에서 고인돌 3기를 발견했다"고 발표하고 "이는 본토보다는 약간 늦다고 추정되는청동기시대(기원전 1900~300년) 또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철기시대전기(기원전 300~1년)부터사람이 살기 시작했음을 확인해 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최관장은 "이번 조사에서 당시 울릉도는 북면 현포리가 그 중심지였음이 새로 밝혀졌다"고말했다.
서울대 박물관팀의 이번 조사에서는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한 사실이 기존 역사적 기록보다적어도 906년 앞섰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것 외 유물이 발견된 지역의 토지를 성분 분석한결과, 6세기이후 신라지역에서 직접 가져온 신라토기를 제외한 무문토기 등은 현지에서 직접 구워 사용했음을 알수 있었다. 또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이후 울릉도는 완전히 신라 문화권으로 편입됐으며 그동안 인구도 많이 증가하여 6세기이후부터는 현포리를 중심으로 서면남서리와 사동리, 북면 천부리와 울릉읍 저동리에 이르기까지 울릉도 전역에 사람이 살기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한편 박물관 특별연구원들은 8월 1일 학술조사보고서 2집을 마무리하고 이같은 연구 결과를학계에 공개키로 했다.
〈울릉·許榮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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