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폴리에스테르 직물 커미션 에이전트 케네스 라이씨(28)는 요즘 고민이 많다. 한국을 비롯 동남아 각국의 섬유를 수입하는 홍콩 삼수이포 직물시장에서 한국산 폴리에스테르 직물거래가 거의 끊겼기 때문이다. 커미션 에이전트는 거래가 성사되고 거래물량만 많으면 커미션을 챙길 수 있으므로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한국산 폴리에스테르 직물 거래량이 대폭 줄기 시작한 홍콩 삼수이포 시장은 올 6월부터 시장 자체가 거의형성되지 않고 있는 상황. 대부분 생지(가공하지 않은 원단)수출인데다 수출가격이 하루가멀다하고 폭락하니 수입상들이 구매를 꺼리는 탓이다.
따라서 라이씨 처럼 한국산 폴리에스테르 직물거래를 알선하는 커미션 에이전트들은 죽을맛이다. 구룡의 한 중국식당에서 기자를 만난 라이씨는 대뜸 '삼수이포 영어'(우리의 콩글리시와 마찬가지인 엉터리 영어)로 "정보를 많이 얻었느냐. 앞으로 시장전망을 어떻게 보느냐"며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대부분 어렵다고 했으나 2, 3년 지나면 좋아질 것으로 본 사람도있었다"고 대답하자 그는 고개부터 가로 저었다.
그는 삼수이포 직물에이전트를 그만두는 대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삼수이포 시장에서'배운 도둑질'을 활용, 봉제직물 에이전트로 사업전환을 하겠다는 것. 홍콩 삼수이포 직물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홍콩인 및 한국인 에이전트들도 라이씨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삼수이포서 컨테이너 떼기의 큰 물량만 취급하다 몇 천야드 짜리 소규모 물량을 다루려니 성에 찰리 없다.
삼수이포 직물시장을 떠나는 사람은 에이전트 뿐만 아니다. 삼수이포 직물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많은 수입상들도 삼수이포를 떠나고 있다. 한국산 폴리에스테르 직물을 취급, 떼돈을벌었던 초기 삼수이포 수입상중 절반이 이미 삼수이포에서 철수했다. 한 때 4백여 곳에 달했던 삼수이포의 직물수입상이 지금은 3백군데도 채 안된다. 남은 수입상들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 삼수이포내 신용포업유한공사의 왕만 사장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수이포를 떠난 수입상중 일부는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홍콩 부동산 값이 폭락하는바람에 쫄딱 망한 사람도 있다고 삼수이포 관계자들은 전했다.
삼수이포 직물시장에선 홍콩인 수입상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는 '신흥 세력'이 태동중이다.삼수이포 직물시장의 재수출 시장인 중국 광동성 라우샤(流沙)의 직물시장에서 활동한 중국인 브로커들이 삼수이포 시장을 '접수'하기 시작한 것. 이들은 홍콩반환과 함께 삼수이포 시장으로 대거 진입,어느새 삼수이포 시장의 '새 얼굴'로 등장했다. 아직 삼수이포 시장의 주류는 아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초기 삼수이포 수입상들이 시장상황에 실망,속속 삼수이포를 떠나고 있어 조만간 이들이 삼수이포를 장악할지도 모른다고홍콩 섬유수출관계자들은 전망했다. 게다가 이들은 기존 삼수이포 수입상들과 같은 중국 광동성 조주(朝州)출신. 조주출신 중국인들은 유태인들과 마찬가지로 장사에는 모두 귀재.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의 화교상권은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들의 주무대인 라우샤 시도 조주지역에 있다.
채널 인터내셔널 디벨롭먼트사의 찬혼룽사장도 라우샤 직물시장에서 브로커로 활동한 인물.그는 3년전 삼수이포에 사무실을 내고 한국산 폴리에스테르 직물을 수입하고 있다. 그에게라우샤 직물시장 상황을 묻자, "한 롤(50야드) 팔기도 힘들다"면서 "라우샤 직물시장의 원단가게 1천5백개중 20%정도만 문을 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산 폴리에스테르 직물의 중국내 주 유통시장인 라우샤 시장이 이처럼 풍비박산난 이유는 무얼까. 찬혼룽사장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공급과잉". 그는 "중국이 수입한 폴리에스테르 생지가 한국이 보유한 생지보다 많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삼수이포 수입상인 합성유한공사 총경리 로버트 찬씨도 같은 의견이었다. 중국시장은 위축됐는데 중국내 공장과한국의 공급량은 엄청 늘었다는 것. 찬씨는 "장사가 워낙 안되는데다 라우샤에서 건너온 브로커들이 설치는 바람에 시장상황을 관망중"이라고 말했다.
시장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라우샤에서 건너온 브로커 출신 중국인 수입상들은 안달이나있다. 삼수이포 수입상들과 달리 라우샤 지역 상인들과 주로 외상거래를 해온 이들은 라우샤 직물시장 상황 역시 최악이어서 자금사정이 좋을리 만무하다. 이 때문에 이들은 삼수이포 시장의 상거래 관행을 무시하기 일쑤고 심심찮게 한국 섬유업체의 수출대금을 떼먹고달아나 버리기도 한다.
삼수이포를 떠나는 사람은 또 있다. 한국 직물업체의 홍콩 주재원들이다. 한국 직물업체들은지난해부터 삼수이포 시장상황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대거 철수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지난5월까지 지역 직물업체인 금강화섬·태왕을 비롯 20여개사의 홍콩지사가 철수, 홍콩에 남은국내 섬유업체의 지사는 동국무역·갑을·고합·동양나일론 4개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동국무역도 이달들어 이사급 지사장이 홍콩을 떠나고 대리급 직원이 지사를 맡을 만큼 홍콩섬유수출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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