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발굴… 여성운동 1백년-최초 여류비행사 박경원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朴敬元·1901~1933)은 일본 창공을 누비면서 조선여성의 존재를 하늘 높이 드러낸 대구 여성이다.

일(日)-만(滿) 2천㎞ 비행을 달성하고 나면 구주(歐洲)까지 방문하리라던 박경원의 야심만만한 꿈은 애기(愛機) 청연호(靑燕號)가 하코네(蒲根) 산정(山頂)과 부딪히는 대참변을 당함으로써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경북 대구부 덕산정(현 대구시 중구 덕산동) 639에서 출생, 33세에 산화한 박경원은 18세에아버지를 여의고, 참변을 당할 당시 70세된 노모가 계셨다.

목공 박덕흥(朴德興)의 딸로 태어나 평범한 여자의 길을 마다하고 창공을 날면서 여성계의신지평을 개척한 박경원의 튀는 성향은 신명여학교 재학시 이미 엿보였다. 수학성적이 뛰어난 우등생이면서도 교복·머리모양을 예사로 어기고 치마길이도 짧게하여 지적받던 박경원은 4학년때 기어코 중퇴하고 18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18세에 도미했다가 25세에 일본 다치가와(立川) 비행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7~8년동안 박경원은 한(韓)-미(美)-일(日) 3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때 일본 요코하마(橫濱) 기예학교를 3년간 다니고 고향 대구로 돌아와 자혜의원(慈惠醫院, 대구도립병원의 전신) 간호사로 일했으며, 도쿄에선 가마다(蒲田) 자동차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첫 여성 자동차 운전자격증 소지자가 되기도 했다고 이옥수씨(전 경북도 부녀과장)는 '한국근세여성사화' 상편 338~343쪽에 적고 있다.

1925년 4월, 일본 다치가와 비행학교에 조선여성으로 첫 입학한 박경원은 누가 '조센징'이라는 말만 꺼내면 시와 때를 가리지않고 따귀를 올려붙이고 끝까지 창씨개명도 하지않는 '지독한 조센징'으로 불렸고, 비싼 수업료를 벌기위해 자취를 하면서 동료들의 비행복까지 빨아주는 엄청난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피눈물나는 수련과정을 이겨나갔다.

혹독한 시련가운데도 다치가와 비행학교에서 레이스가 열릴때마다 여성으로 유일하게 입상하던 박경원은 소화3년(1928년) 1월에 이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달 28일에 일본항공사상 첫 조선여성비행사(3등 조종사)가 되었다. 그해 7월 2등 비행사로 승진했다(매일신보제9299호).

성격이 침착하고 쾌활했던 박경원은 쓰라린 수련과정을 겪으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공박하는 수기를 써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여류비행가는 어째서 발전이 없을까? 한사람이 비행사가 되는데 약2천원(당시 논10마지기값)이나 들지만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비행사자격증을 취득한 여류들은 그후에 어떻게됐을까… 사회의 전적인 뒷받침없이, 또 여류의 존재를 무시하는 분위기에서 여인들은 좌절하고 희망을 버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인내로서 나의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빨리 날고 싶다. 빨리 빨리 여류비행사의 기수로서 내가 앞장서서 움직이자"

다치가와 비행학교를 수석졸업한 뒤 비행 2백시간, 단독비행 11시간의 대기록을 세우고 있던 박경원은 1932년 가을 나고야신문사 주최로 일본-만주 연락비행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에고향을 비행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기뻐했으나 1등 면허가 없다고 참가를 거절당했다. 당시 여류에게는 2등이상의 비행사 면허를 주지않던 때였다. 낙망에 빠진 그를 위해일본 비행학교 동창들이 육군성으로 찾아가 교섭한 끝에 '살무손 2A2'기를 입수, 박양의 고국방문비행을 돕기로 했다. 동창들의 도움으로 박경원은 '청연호(靑燕號)'라 명명된 애기를타고 일본 도쿄→오사카→울산→서울→평양→신의주→봉천→신경까지 2천㎞나 되는 먼거리를 여류항공사상 초유의 고국방문 겸 일(日)-만(滿) 비행의 장도에 나서게 됐다.1933년 8월7일 오전10시35분 예정대로 '청연호'는 일본 하네다 공항을 이륙했다. 이륙 10분후 모든 조건이 양호하다는 제1신이 하네다에 입수됐고, 또 10분 후에는 하코네가 멀지않았다는 제2신이 접수됐고, 가장 난코스인 하코네 산을 무사히 넘었다는 제3신까지 들어와 마음을 졸이며 소식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항로 제일의 난코스를돌파한 이상 '청연호'는 예정대로 현해탄을 넘어 성공적인 비행을 할 것으로 믿었건만 오전11시를 좀 지나 무선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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