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덕유산정상 산장에서의 일이다.
단신으로 지리산을 종주하고 막 덕유산에 온 강원도 원주의 이모씨(34). 점심으로 라면을 먹던 그가 갑자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강원도쪽으로 가는가했다. 그런데 다시 지리산으로간다는 것이다. 왜냐고 묻자 한참 뜸을 들이다가 "(지리산에) 또 가고 싶네요"했다. 도대체무엇이 산악인들로 하여금 이토록 지리산에 '미치도록' 했을까.
'노고단 털보' 함태식옹(71). 그는 '터줏대감'처럼 28년간 지리산을 지키고 있다. 70년대 지리산을 올랐던 사람치고 '노고단 털보'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 텁수룩한 수염에 눈빛이 유독 반짝이던 산사나이. 벌써 고희를 넘긴 나이. "이제 산귀신 다됐다"고 허허 웃으며 취재진을 맞는다.
"내같이 입바른 소리만 하는 사람이 어디가겠어". 그저 지리산에만 오면 마음이 편하고 고향에 온 것같다는 것이 지리산에 28년이나 있게된 이유다. 아들 함천주씨까지 피아골에서여성산악인과 백년가약을 맺어 지리산 인연이 남다르다.
그가 17년동안 지내던 노고단에서 '밀려나' 피아골산장으로 간지도 11년이 지났다. 88년 1월3층짜리 새노고단 산장이 생기면서 함옹의 노고단산장은 강제로 폐쇄됐다. 그는 1월 4일 눈이 허리까지 빠지던 그날, 짐을 지고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해서 피아골로 '쫓겨오던' 날을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피아골산장은 지리산 8개 산장중 가장 깔끔한 느낌을 준다. 조용히, 깨끗이, 그리고 불조심. 그가 등산객들에게 부르짖는 표어다. 인터뷰중에도 그의 눈과 귀는 계속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가 있었다. 말하다가도 사람들에게 가 "라디오를 꺼라""과일 껍질을 버리지 마라"등 '주문'을 내렸다. 깐깐한 시아버지같은 모습.
아직 못 이룬 소망이 있다. 지리산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우는 것. "빨치산으로, 등반사고로 또는 자살로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여. 그 사람들을 위해 비를 만들어 원을달래줘야지".
지리산이 좋아 아예 지리산에 뿌리를 내린 이들도 있지만 틈만 나면 지리산으로 치닫는 산사나이들도 많다.
이들이 지리산을 찾는 것은 신앙에 가깝다. 천왕봉을 수백번 오른 등산인도 있고, 주능선 45㎞를 한달에 한두번씩 오가는 사람도 있다. 천왕봉 외에도 1천m가 넘는 20여개의 준봉과15개의 지능선, 계곡들을 '제집 들여다 보듯'하는 이도 있다.
대구의 산악인 장건웅씨와 김특희씨도 그런 이들중 하나다. 지금도 산행의 90%를 지리산으로 간다.
"글이나 말이 뭐 필요 있어요? 자꾸 가보면 되지". 산 좋아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뻐덕뻐덕한 모습. 장씨는 18세이던 59년부터 지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60년대초 아직 빨치산의 잔비가 남아있던 상태에서 토벌대들에게 총 맞을 위기도 몇번이나 넘기고도 지리산만 고집했다.
사실 좀 유별스런 면도 있다. 70년대 등산객들이 많아지자 동굴탐험을 시작했다. 80년대 동굴탐험도 각광을 받자 스쿠버다이빙으로 종목을 바꾸었고 거기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자 90년대 들어서는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그래서 이젠 다시 산으로 돌아갔습니까"라고 하자 "아니죠, 산은 영원한 고향이죠"라고 답한다. 그는 지리산의 역사와 지명유래를 훤히 꿰고 있었다.
파문한 지리산 비구니로부터 '지리산의 봄을 드립니다'란 장문의 편지를 받아 대구산악인들사이에선 '지리산의 봄을 안은 사나이'로 통한다.
둘은 시종 지리산의 환경오염을 끈질기게 지적한다. 김씨는 "보통 사람들은 계곡마다 명경지수니 뭐니 해도 마음놓고 계곡물을 마실수 있는 곳은 한군데 밖에 안된다"고 했다. 3개도5개군에 속하다보니 지자체들이 "동강 동강 내놨다"는 것. "이젠 서구처럼 계곡마다 지키면서 스티커를 발부하는 레인저제도를 둬야 합니다"고 주장했다.
"이번주엔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여름에는 지리산에 안가요"라고 답한다. 사람들이 워낙많아 여름에는 지리산을 피한다는 것이다. "그사이에 몇군데 돌면서 몸을 풀어야죠".마음은 벌써 가을 지리산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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