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8월7일 오전10시35분, 예정대로 푸른 제비 '청연호'는 일본 항공사상 첫 조선여류비행사이자 여류 항공계 첫 희생자로 기록된 박경원을 싣고 일본 하네다 공항을 이륙했다.당시 최신형으로 꼽혔던 살무손 2A2기 앞에 날아갈 듯 화사한 카키색 비행복에 단정한 비행모, 이마를 두른 푸른색 선글라스를 쓴 훤칠한 모습으로 나타난 박경원은 흰빛 비행기 날개를 짚고 붉은 빛을 띤 입술에 엷게 웃음을 띄우면서 환송나온 전일본 항공계 인사, 동창들, 친지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한 뒤 한결같은 선망과 격려의 눈빛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라 기수를 고국의 창공으로 향했다.
첨단 과학으로 무장된 요즘 항공기와 달리 하반산은 비행기내에, 상반신은 비행기 밖에 내놓은 박경원의 '시계 비행(視界 飛行)'을 모두들 가슴졸이며 기다렸다.
이륙 10분 후 모든 조건이 양호하다는 제1신이 하네다(羽田) 공항에 타전됐고, 또 10분 후에는 하코네(箱根)가 멀지않았다는 제2신이 접속됐다. 가장 난코스인 하코네 산을 무사히 넘었다는 제3신까지 들어와 마음을 졸이며 소식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항로 제일의 난코스를 돌파한 이상 '지독한 조센징' 박경원의 꿈과 청춘을 실은 푸른제비호는 예정대로 현해탄을 넘어 성공적인 비행을 할 것으로 믿었건만 오전 11시 좀 지나 갑자기무선이 뚝 끊겼다.
이륙한지 50분만에 청연호는 안개에 시야를 빼앗겨 산과 충돌, 박경원의 하늘에의 도전은막을 내린다.
매일신보 9229호(1933년8월9일) 2면 기사 톱기사는 박경원이 청연호의 산정 충돌·추락사로좌절, 끔찍한 최후를 맞았음을 보도하고 있다.
'조선여성의 존재를 공중에 나타내어가지고 그 웅지를 다시 동아대공(東亞大空)에 휘날리려는 계획으로 장도에 오른 2등 비행사 박경원양(33)은 호외로 보도한 바와 같이 7일 오전 10시35분, 우전(羽田) 비행장을 출발한 이래 농무로 인하여 행방불명이 되어 그 소식을 끊었던바, 8일 오전 8시에 정강현 전방군 다하촌 흑악산(靜岡縣 田方郡 多賀村 黑嶽山)중에 애기청연호와 함께 추락, 처참한 최후를 남긴 것으로 판명되었다. 산중에 떨어진 청연호는 대파됐고, 박경원은 보기에도 참사를 하였는데 현장에는 소방조원들이 급행하였다. 박양의 행방을 근심하던 관계 각 방면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랠뿐 아니라 웅지가 중도에서 좌절되고, 비참한 최후길을 맞은 박양을 적이 애석케 생각하였다'
이날짜 신문은 참변의 원인을 코스의 서투름에 두고 있다.
방만(訪滿) 비행 도중에 불의의 참사를 당한 박경원양은 하꼬네(箱根)의 밀운에 방해되어이두(伊豆) 반도를 5회 비행하다가 코스가 서툴러 참변을 당한 듯하다고 밝히고 있다.1933년 8월9일자 동아일보는 '조선이 낳은 유일한 여류비행가 박경원양이 향토방문 비행 도중 애기 청연호와 함께 추락 참사한 것을 발견하였다'고 크게 보도하면서 이번 방만비행이구미(歐美) 방문비행의 전초전이었다고 보도, 뜻있는 이들을 더욱 애석케했다.일본에서는 관민합동으로 아다미시 사천왕사(熱海市 四天王寺)에서 그녀를 아끼던 수많은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다찌가와 비행학교 학교장을 지냈는데 마치 국장처럼 엄숙한 분위기였다.
유해는 의사이던 동생 박상훈(자혜의원 공의·경북대의대 전신교 제1회 졸업, 경북대 의대동창회 명부상 확인)이 거두어 무언의 개선길에 올라 팔공산 동화사에 안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경원 40주기이던 1974년 8월7일, 장례식장이던 일본 아다미사원에서 주최한 추모제에는일본에 생존해있던 70대의 동창생 13명(그중 1명은 여성)이 참석, 젊은날의 박경원을 그리워했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박경원에게 '멋쟁이'라고 표현했으며, 한 동창은 지금도 박경원이라는 여성을 사모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박경원이 학생시절에 쓴 시와 수필집을간직하고 있었다.
그자리에 참석했던 김경오씨(사단법인 대한민국항공회 부총재, 한국여성항공협회장)는 "정말자료로서 꼭 가져오고 싶었지만 죽을때까지 내놓을 수 없다고 하여 아쉬웠다"고 밝혔다.지금처럼 기상과학이 발달되었던들 찬란한 30년대 가장 오래된 여류 파일럿으로 세계 항공사상 큰 업적을 남겼을 박경원의 꿈은 채 피기도 전에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산화된 박경원의 애기 청연호의 속도계는 거의 정지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시속 60마일에서멎은채 조난 당시 그곳 면장에게 발견돼 면장의 집에서 3대째 보관돼왔으나 40주기 추모제가 열리던 날 한국여성항공협회 김경오씨에게 기증됐고 아직 김회장의 책상머리에 놓여있다.
대한민국항공회 김경오부총재는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지난 4월 개관한 항공박물관(무안소재)에 박경원양의 애기 청연호에 달렸던 속도계를 기증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박경원양의원 추모비가 대파돼 본 모습을 잃게 됐다는 새로운 사실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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