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의 밑둥을 떠받치고, 영.호남을 보듬고, 빨치산의 한과 비극을 품에 안은 지리산. 그리고그 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해방과 6.25를 거쳐 산업화 물결속에서 지리산 기슭 사람들도 여느 시골처럼 많은 이들이도시로 도시로 향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그러나 지난 67년말 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지리산에는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텅빈 동네를 다시 찾은 이들은 '토박이'들이 아니라 자본을 거머쥔 '도시민'들이었다. 식당과 술집 건물이 들어서고, 민박촌이 형성됐다. 국립공원 관계자는 "지리산 주변 상가와 민박촌의 80% 이상은 외지인 소유"라고 밝혔다. 이와 달리 지리산 '토박이'들은 변변한 '돈벌이'도 없고, 자녀교육이나 문화혜택도 여의치 않지만, 조상대대로 그 산에 뿌리를 박고 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이곳 16개 마을중 그나마 관광객들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은 내령리 팔랑, 부운리 개선골, 덕동리 외얏골과 버드재 등 4~5개 마을에 불과하다. 지리산 기슭 마을대부분이 그러하듯 이곳 산골동네도 48년 여순반란 당시 소개돼 불태워진뒤 5~6년만에 다시형성됐다. 특히 70년대 이후 상당수 주민들이 도시로 빠져나간 뒤 묵혀놓은 논밭은 이제 나무만 무성한 산으로 둔갑했다. 그러나 최근엔 IMF한파로 옛 고향의 터전에 발붙여 살기위해 되돌아오는 젊은이들도 꽤 많다.
지리산 뱀사골 코스로 달리다 오른쪽 산기슭으로 들어간 내령리 팔랑. 포장길과 비포장길이뒤섞인 산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5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끝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토끼.꿩.너구리.노루를 심심찮게 볼수 있고, 가끔 멧돼지가 내려와 밭을 헤집을 만큼 깊은 산골."10년전만 하더라도 멧돼지 때문에 감자농사를 다 망칠 정도였지만, 요즘엔 밭농사가 별로없어 멧돼지 보기도 쉽지 않다"는 윤병남씨(65). 지게를 지고 동면 인월장까지 가려면 3시간이 족히 걸린 이곳에도 신작로가 생기면서 차들이 오가고, 3가구는 민박도 한다. 채소나 산나물, 한봉으로 겨우 생활을 이어가는 이 곳도 이젠 '돈벌이'를 위해서 관광객들에게 의존할태세다. 최근에 고향을 다시 찾은 공창용씨(51)도 관광객을 맞기 위해 민박건물을 짓느라 분주하다. 공씨는 "5월중순 덕두봉 철쭉제는 겁나게 멋있지라"며 손짓했다.
덕동리 버드재. 고추, 콩, 들깨, 약초 등 밭농사를 일구며 5가구가 살고 있다. 이곳에도 예전엔 보리, 쌀 등을 집집마다 30가마씩은 거뜬히 거둬들일만큼 꽤 넓은 논밭이 있었다. 하지만수년간 묵혀진뒤 이젠 산으로 바뀐 논밭이 대부분이다. 노구를 이끌고 얼마되지 않는 콩과약초농사를 지으며 홀로 사는 장순남씨(73.여). "콩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꿩만 설치지 않으면 살만한데"라며 한숨을 지었다. 주민들은 꿩이나 토끼 등 산짐승들이 밭농사를 망쳐도 이들을 절대 보호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근 고향으로 돌아온 하종기씨(36). 아내와두아들과 함께 옛 터전을 가꿔 고향산천에 뿌리내리기로 굳게 다짐했다. "고로쇠액도 채취하고, 한봉도 키우고, 틈틈이 국립공원 공공근로사업도 하면 이곳만큼 살기좋은 곳도 없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덕동리 외얏골 김병석씨(65)와 부운리 개선골 양봉림씨(58.여)도 비록 국립공원 주변 관광객들의 혜택은 받지 못하지만, 토종꿀과 고로쇠 채취를 하며 한가구뿐인 동네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서리 남산과 외곡리 조동. 두 동네는 비록 각각 30가구와 6가구로 규모는 다르지만 닮은 꼴이다. 6.25전 국군의 소개작전에서도 유일하게 동네를 유지한 조동.당시 남산주민 상당수가 이주한 곳이 조동이기도 하다. 두 동네는 피아골 입구 왼편 산기슭에 위치한데다 동네 주변이 모두 밤나무로 뒤덮혔다. "70년대 나무를 베 불사른뒤 밭을 일구는 '화전(火田)'을 막기위해 정부에서 밤나무를 밭에 심게 했다"고 남산의 김용환씨(76)는전했다. 8남매를 키우며 대대로 이 곳을 지켜온 김씨는 동네마다 민박이나 상가 식당일 등에만 더 신경쓰는 바람에 묵히고 있는 땅이 늘어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피아골 주변 식당중에 토박이가 운영하는 곳은 한 집뿐"이라고 말했다. 외지인들이 대부분 터를 매입해 건물을 올린 것이다. 남산은 밤나무외에도 논농사와 철쭉꽃 재배 등 부수입원이 있지만,조동은 밤이 유일한 소득원이다. 동네가 산비탈에 위치해 있기 때문. 음력 8월중순이면 이곳남산과 조동에는 산기슭마다 밤을 줍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룬다. 연중 몰려드는 관광객들의수혜에서도 저만치 밀려나 있는 지리산 '토박이'들. 그들은 손바닥만한 밭뙈기에 의존하며예전처럼 그렇게 묵묵히 산기슭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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