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대학의 위기에 관한 단상

대학이 실업자 양성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한탄의 소리가 높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 대학의 이상은 진리탐구라고 말해왔다. 적어도 인문사회와 기초과학의 분야에서는 그러했다. 그러나 고등교육이 대중화된 우리 세대에서 그러한 설명은큰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빠르게 변동하는 경제, 기술, 국제, 사회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가진 인력을 개발하는 장소로서 대학의 개념이 변화를 요구받았고 또 사실 그렇게 기능해왔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고대 그리스의 아카데미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 하더라도 르네상스시대에 시작된 서양의 대학도 신학, 법학, 의학과 같이 이미 제도권의 지배이념으로 된 종교사상을 재생산하거나 기존 사회질서의 관리자계층을 키우는 고급직업훈련원의 역할로 시작한 셈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할 것은 이 직업훈련원은 새로운 진리를 개척하는 노력에 헌신하는 많은 '괴짜'들의 안식처이자 양성소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학이란 결국 진리탐구라는 이상과 고급인력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실용적 준비과정이라는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공간과 시간을통해 그 두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또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하는가 하는 것은 대학에서공부하는 학생이나 교수들 개개인의 가치관과 선택에 달린 문제라 할 수밖에 없다.어떤 사회나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고 무언가 기존질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학의 기능은 모든 학생이나 교수가 그러하기를 기대하는데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소수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소수가 숨쉬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있기위해서는 그 대학이 다수에게 직업훈련원의실용적 기능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되는 미묘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 두가지 기능이 서로를 받쳐주는 그 미묘한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대학의 생명인 셈이다. 실제사회에서 고급인력으로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이른바 '실력'을 키우는 일과 현실의 사회와기존의 지식체계를 비판하고 그것의 초월을 꿈꾸는 '몽상과 반역'의 활동이 공존하는 그런공간일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 대학의 위기는 당장은 국민경제의 파탄으로 고급인력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급격히 축소된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 상황은 전공을 막론하고 많은 학생들을 공무원시험준비로 내모는 현상을 낳고 있으며 '준비된 실업'의 공포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다. 대학의경영인과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존재이유를 증명해내야만 하는 시험에직면해 있다. 학생이 찾지 않는 전공은 존재이유를 부정당하고 부실계열사로 취급되고 있다.그러나 실용과 함께 몽상과 반역이 숨쉴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대학이 된다는 것은 나라경제의 파탄이라는 외적 요인이 초래하는 위기와는 또다른 내면적 위기를 뜻한다. 나른한 오후 캠퍼스의 한 모퉁이에서 카뮈와 사르트르, 카프카와 하이데거, 그리고 공자와 정약용에관한 강의가 힘있게 들려오지 않는 그런 대학에는 두뇌없는 로봇 생산체제를 넘어서는, 21세기를 준비하는 정신의 경쟁력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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