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청빈 예찬

조선조의 명상(名相) 황희(黃喜) 정승은 가난해 언제나 헌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날밤 부인이 그 의 헌옷을 빨고 있는데 입궐 명령이 내렸다. 할 수 없이 뜯어놓은 솜을 걸치고 입궐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은 언뜻 보고 그가 양피(羊皮)옷을 입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솜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 '청빈(淸貧)'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비뚤어진 배금주의가 팽배해 있는 우리 사회와 정치 풍토를 생각해보면 이 일화는 너무나귀하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 우리는 정의구현과 공신력이 생명인 법조계와 지성과 양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학계(대학)의 비리를 보면서 비감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변호사.판사.검사들이 거액의 금품을 주고받는가 하면 대학교수들이 교수임용에 돈을 개입시킴으로써 비감을 넘어 분노를 들끓게 하기도 했다.

'전관예우' 논란이나 '유전무죄 무전유죄' 시비도 IMF 한파에 찌든 우리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었다. 93년 공직자 재산 공개 때25평 짜리 아파트 한 채와 부인 명의의 예금 1천75만원 등 6천4백34만원을 신고해 상위직법관 1백3명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던 조무제(趙武濟) 부산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 소식은 삼복더위의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같다.

그야말로 '꼴찌에게 박수를'이다. '나의 것이아니면 누리지 않는다'는 신조로 살아온 그의 청렴과 강직, 원칙주의는 높이 평가돼야 마땅하다. 조무제 부산지법원장의 '청빈 외곬 삶'은 법조계는 물론 우리 사회의 귀감이 돼야 한다. 나아가 법조계의 명예회복과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도 견인차가 돼 주기 바란다.

프란체스코는 '청빈이 있는 곳, 그 기쁨이 있는 곳, 그곳엔 탐욕도 강욕도 없다'고 했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고 청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알아주고 떠받드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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