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더 중요하다. 영국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맞바꿀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영국인들에게 실제로 인도보다 더 중요한 부(富)이다. 인간이 인간적인 것을 갈무리하고 지켜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을 떠받치지 못할 때, 물질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은 어떤 고상한 가치를 숭앙하는 관념적인진술이 아니다. 인류가 근대의 폐해를 너무나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지금, 이 말은 살아남기위해서는 정말로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삶의 '구체적인 기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신을 무시하면, 물질이 아무리 흘러넘쳐도 그것을 가치있게 활용할 수 없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개발한 물질이 인간을 집어삼켜버리는 것이다.
문학은, 인간이 정신적인 것을 지키고 갈무리하는 가장 종합적인 수단이다. 근대 이후에, 인간은 신과 종교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신과 종교 대신에, 이데올로기가 일정 기간 신의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른 지금, 인류는 그것마저 잃어버렸다. 돈과 물질만이 인간의 지평을 휩쓸고 돌아다닌다. 이 도도한 흐름에 대항하기 위해서 인간은 사라진 신과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전반적인 의미의 '문화'에게 부여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문화가 대중의 품으로 옮겨오면서 그것마저 돈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영화와 대중음악으로 대표되는 이 문화는 더 이상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여러가지를들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와 대중 음악이 '직접적인'매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어떻게 보면, 영화와 대중음악의 매체인 이미지와 음향은 음식물처럼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충족 단계에서 즉각적으로 소비된다. 사유가, 삶의 상수(常數)를 뽑아내서 조직화하는 인식기능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식은 '언어'를 통해서 조직된다. 컴퓨터 언어가 발달하고, 이미지 언어가 발달했다고 해서, 인간이 언어를 떠난 것은 아니다. 컴퓨터 언어나이미지 언어도 여전히 언어이다. 문제는 여전히 문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의 기능은 현대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이 발달시켜온 온갖 매체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인식 창조 기능을 가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안전하지 않다. 문학 생산자들 자신이 대중문화의 성공을 곁눈질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가 정신 대신, 상업주의 논리가 무서운 속도로 문학을 침범하고 있다. 어떻게든 '팔리는 문학'을 만들어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좋은 문학을 했던 작가와 편집자들이 스스로 상업주의 문학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더욱더 끔찍한 것은 그러한상업주의 논리를 그럴듯하게 문학 테크노크라트들이 논리적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 독자들은 그러한 포장을 순진하게 믿고 소비한다.90년대 들어 한국 문학은 상업주의의 위협 앞에 속수무책으로 내던져져 있다. 이대로 가면,한국문학은 아무 가망도 없다. 신문 광고가 문학비평을 대신하는 괴상한 관행이 정착되어있다. 대중은 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가 굉장한 문학적 성과물인 줄 알고 있다. 매스컴도 덩달아 자본의 논리만 따라다닌다. 그 사이에, 우리의 정신은 모두 죽는다. 21세기를 향해서 한국인들은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를 들고 다가가고 있다. 글쎄, 세계인들에게도 그렇게박찬호와 박세리가 굉장한 존재로 여겨질까? 박찬호와 박세리가 언제 우리의 거덜난 자존심을 어루만져줄까? 항구적인 가치를 만드는데 등한시하는 민족은 21세기에 살아남지 못한다.21세기는 인간이 아무 생각없이 키워버린 물질과의 한판승부가 될 것이다. 물질이 언제까지인간에게 얌전하게 봉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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