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중고 수재민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수마(水魔)가 휩쓸고 간 수해지역 주민들이 비가 그친뒤에도 질병과쓰레기, 단전 및 단수, 생필품 부족 등으로 큰 고통을 겪고있다.

서울, 경기, 강원, 충청 등 수해지역 주민들은 집과 가재도구가 모두 빗물에 쓸려나간 상실감과 아픔을 딛고 재기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이들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전기, 수도, 의약품 등 기초적인 지원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질병= 수재민 대부분은 흙탕물 속에서 대피하거나 복구작업을 하다 피부병, 호흡기질환등 갖가지 질병에 감염돼 고통받고 있으며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등 각종수인성 전염병의만연이 우려되고 있다.

집중호우로 범람한 빗물은 상류에서부터 갖가지 오염물질을 모두 끌고 내려온데다 재래식화장실과 하수도 등에서 넘친 오수가 오염도를 더했기 때문이다.

중랑천 제방 붕괴로 수해를 입은 서울 노원구 상계1동 노원마을 주부 우선옥씨(39)는 심하게 기침을 하는 큰딸 오혜석양(12·수락초등학교6년)을 데리고 의료반을 찾았다가 혜석이가급성폐렴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혜석양처럼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수재민들은 흙탕물과 땀에 젖은 몸을 제대로 씻지도 못한채 밤이면 살을 파고드는 모기떼에 시달리고 있으며 식수오염으로 인한 설사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10일 보건복지부 중앙재해 구호활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8일 현재까지 집중호우가 내린 지역의 설사환자는 경기도 2백56명, 인천 3백27명, 서울 23명 등 모두 6백6명으로 조사됐다.이에따라 복지부는 수해지역에서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등 수인성 전염병 발발 가능성이높은 것으로 보고 환자 조기발견 및 확산방지를 위해 보건소에 환자발생을 일일 보고하도록긴급지시하고 민간의료기관에도 환자발생 보고를 당부했다.

▲악취, 먼지, 쓰레기= 수해지역마다 예외없이 급류에 휩쓸려온 각종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루고 재래식 변기와 하수도에서 역류한 각종 오물로 악취를 풍기고 있다.

또 비가 그치면서 쌓인 진흙과 모래가 먼지로 변해 수해지역을 덮고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이번 호우로 발생한 폐기물의 양이 1만1천5백90t, 처리대상분뇨는 1천6백21t에 달하며 10일 오전까지 폐기물 11%, 분뇨 33.2%를 처리하는데 그쳤다고 밝혔다.호원천과 회룡천의 범람으로 시가지 대부분이 물에 잠겼던 의정부시 의정부2, 3동과 호원동일대 도로에 두텁게 쌓인 뻘과 진흙이 햇볕에 마르면서 마을을 뿌옇게 뒤덮었다.동두천시 생연동과 보산동 일대, 포천군 소흘읍, 신북면 일대도 차량들이 지나갈때마다 마른진흙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고 골목마다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다.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충남 당진군 지역도 상류에서 밀려든 쓰레기가 골목마다 가득히 쌓인채 악취를 풍겨 코를 싸쥐고도 지나기 힘든 지경이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수몰지역의 물이 빠지면서 먼지와 악취가 발생해 주민들이 큰 불편을겪고 있지만 이를 제거할 장비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며 "쓰레기와 토사를 모두 치우는데 1주일 가량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 이번 집중호우로 한때 1백63개소의 도로가 통제됐으며 10일 오전 현재통행이 통제되고 있는 도로는 서울 7곳, 경기 27곳, 강원 1곳,인천 1곳 등 36개소에달한다.경원선 의정부~동안 구간, 경의선 일산~문산 구간, 교외선 능곡~의정부 구간등 철도 선로 3곳이 유실돼 경원선의 경우 이달말쯤, 경의선은 다음달 말, 교외선은 연말쯤에나 복구가 가능할 전망이다.

서울의 경우 올림픽대로 한남대교남단~염창IC 구간, 동부간선도로 양방향은 이날 아침 개통됐으나 강북 강변도로 일부구간과 잠수교 등 중추역할을 하는 도로들이 통제돼 복구가 완료될때까지 극심한 정체를 예고하고 있다. 휴일인 9일 오후에는 휴가지에서 돌아오는 차량들이 교통통제 소식을 모른채 올림픽대로, 동부간선도로 등으로 진입하는 바람에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단전·단수 및 통신망 훼손= 중앙재해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이번 수해로 수돗물 공급이 끊긴 곳은 8개 시·군 2만4천2백95가구며 이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수재민은 7만7천7백88명에 달한다.

수돗물 공급중단 사태는 주로 경기도에 집중돼 고양과 의정부, 동두천, 하남, 파주, 남양주,양주, 김포지역 등에서 취수장이 침수되거나 정수기계 고장으로 2만3천여가구 7만6천8백여명에 대한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고 있는데 설비 복구가 끝나이들 지역에 수돗물이 정상 공급되려면 1주일 정도 걸릴 전망이다.

소방서가 급수차를 동원, 식수공급에 나서고 있고 한진그룹이 9일 경기북부지역에 생수 3천5백상자를 지원하는 등 구호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지만 10만여명에 달하는 이재민들의 갈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단수와 함께 이번 호우로 전기공급이 중단된 곳은 18만1천1백66가구, 전화선이불통된 곳은6만8천6백4가구, 가스공급이 중단된 곳은 3만9천9백83가구에 달해 많은 수재민들이 어둠과통신두절 상태에서 폭우와 싸웠다.

▲구호품 지원 혼선= 지방자치단체와 대한적십자사가 침구류,옷가지, 라면, 취사도구 등 구호품을 지원하고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신속하고 정확한 배급이 이뤄지지 않아 수재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9일까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 구호품은 침구류 1만7천여점, 생필품 1만7천여점, 취사도구1천5백여점, 기타 1만4천여점 등이다.

또 대한적십자사가 16개소의 급식소를 운영하고 쌀 1천1백여㎏, 라면 1만2천여상자, 생필품6천2백여점, 침구류 1만2천여점 등을 지원했고 전국재해대책협의회에도 많은 수재의연품이접수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구호품들이 적재적소에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노원구의 경우 9일까지 생필품 7백14세트, 모포 2천4백29대, 라면 6백86박스를 구호품으로 지급했지만 골고루 배급되지 않아 주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노원구 상계1동 전세입자 김모씨(30)는 "구호품이 왔다지만 라면 한개 받은게 없다"며 "정작 돈이 없어 모든 게 아쉬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물자가 전달이 안되고 집주인들에게만 물자가 나눠지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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