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섬유수출 전진 기지를 가다-터키(上)

터키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이스탄불은 동서양 문명의 각축장이면서 중요한 교역항이었다. 15~16세기 베네치아와 제노아 상인들은 이스탄불을 거점으로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다. 오늘도 이스탄불은 터키의 중추산업인 섬유산업의 중심지이자, 터키무역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다.

터키는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이후 꾸준히 유럽화를 추진해왔다. 아랍문자를 영어식터키문자로 바꾸는 등 개혁을 단행했고 EU(유럽연합)가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는 정정 불안과 경제상황 악화로 EU로부터 가입을 거부당하고 있다. EU가 터키의 가입을 거부하는 이유는 많다. 터키는 살인적인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천정부지로 물가가 치솟자, 터키정부는 5백만 터키리라짜리 고액권을 내놓았다. 그러나 터키인들도 자국화폐를 기피하고 있다. 터키리라는 교환가치만 있지 보유가치는 없어 돈이 생기는 즉시 달러나 마르크화로 바꿔 보관한다. 이 때문에 이스탄불시내 중심가는 한집 건너 은행이고 다시 한집 건너 환전소가 들어서 있었다.

이와 함께 터키경제를 좀먹고 있는 것은 터키인들도 정확히 모르는 블랙마켓(암시장)의 규모다. 이스탄불 거리엔 벤츠·아우디 등 유럽의 고급차가 즐비했다. 이스탄불 시민들의 소득수준이 평균치를 상회한다고 봐도 1인당 국민소득 3천달러인 국민들이 넘볼 수 없는 소비수준이었다. 이에 터키정부는 대대적인 '블랙마켓 청소'에 들어갔다. 만성적인 재정 및 무역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먼저 금융실명제를 추진하면서 은행들의 목줄을 죄기 시작했다. 터키엔 현재 69개 은행이 있으나 지점은 하나도 없고 30평규모의 사무실만 갖춘 '부실은행'도 있다. 터키정부는 이러한 '부실은행' 12개를 퇴출시키는 한편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에 은행들은 거래 기업에게 추가담보를 요구하거나 신용한도를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산 직물 수입상들의 신용한도도 낮아져 신용장 개설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형편이다.

한국은 대터키 폴리에스테르 직물 최대 수출국. 터키 통계청에 따르면 터키의 97년 폴리에스테르 직물 수입은 96년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터키수입상들은 관세 및 부가세 포탈을 위해 실제 수입액을 줄이는 언더밸류(under-value)로 신고하고 있어 이 통계는 거의 신빙성이 없다. 하지만 언더밸류 거래는 최근 급제동이 걸리고있다. EU측은 터키정부에 밀무역 강력단속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 폴리에스테르 직물중 상당수 물량이 두바이를 통해 터키를 거친 뒤 EU지역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이에 터키정부는 두바이-터키-유럽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올해 1월초부터 직물류 수입 통관세관을 종전 70여군데서 4군데로 축소하고 통관검사를 강화하고 있다. 물량 대조와 원산지 조회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통관 소요기관이 2주이상 지체되고 있으며 물품도착 항구에서 지정세관으로 이동에 따른 경비 등 터키내 물류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효성물산 이스탄불지점 임문섭 과장은 이와 관련 "지난해까지만 해도 터키 정부가 직물수입상들을 지원했으나 올해들어 쇤메즈 등 터키 직물 대기업들이 정부에 로비, 자국업체 보호로 정책이 바뀐 것같다"며 "명목은 언더밸류 체크지만 사실상의 수입규제"라고 주장했다. 한국산폴리에스테르 직물 대터키 수출 관계자들도 "신고중량보다 10~20%정도 중량을 초과시켜 선적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터키세관은 터무니 없이 우리 수출면장 사본까지 요구하는 경우도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우리 직물수출업체끼리의 과당경쟁도 터키시장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업체끼리의 과당경쟁으로 수출단가가 수시로 떨어져 터키 수입상들이 한국산 직물의 수입을꺼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 트레이딩의 민우평 부장은 이와 관련 "일본업체들은 종합상사를수출창구로 하고 대만업체들은 회사별로 아이템을 달리해 수출에 나서지만 우리 업체들은거의 무한 경쟁에 나서고 있기때문"이라며 "우리 잘못으로 제값을 받지못하면서 바이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직물시장은 고품질 직물을 주문하면서도 가격은 낮춰줄 것을 요구하는 등 까다롭다.홍콩과 두바이 처럼 품질은 상관않고 무작정 가격만 후려치는 가격시장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쿼터로 수출물량을 규제하고 있어 홍콩과 두바이처럼 마구잡이 수출에 나설 수 없다.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과당경쟁을 벌이며 생지(가공하지 않는 원단)수출로 쿼터를 소진하고있었다. 터키 수입상들은 폴리에스테르 생지를 수입, 이스탄불 서남쪽에 있는 섬유도시 브루사의 원단가공소와 나염·프린트공장에서 가공·봉재해 미국·유럽등지로 수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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