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종교사는 팽창과 분열의 역사였다. 전체 인구 중 종교인이 절반에 가깝고, 종교의종류도 다양해 '종교 백화점'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이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대 초반까지 종교계의 월남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는 북한의 종교탄압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특히 평안도를 중심으로 번창한 기독교 세력이 대거 남행길에 올라 남한 종교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개신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한경직 목사가 영락교회를 세운 것도 그 무렵이다.
개신교계로서 1950년대는 분열의 시대였다. 양대축이던 장로교와 감리회가 핵분열하면서 팽창과 분열이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1950년대 중반 기독교장로회가 장로교에서 분리된 데이어 후반에는 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과 통합 교단 등이 각각 독자노선을 선언해 분열이본궤도에 올랐다. 예장 합동과 통합은 현재 개신교의 주축을 이루는 교단이다.1950년대는 불교계로서도 변혁의 시기였다. 일제시대에 정착한 대처불교가 비구승에 의해밀려나면서 현재의 조계종이 탄생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는 1954년에 내려졌던이승만 대통령의 불교정화유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대처 불교는 더이상 좌시할 수없다며 비구승의 산중사찰 접수를 용인했다.
그러나 당시의 비구승의 산중사찰접수 사태는 이후 조계종과 태고종간의 갈등요인으로 남아있다. 조계종은 당시의 대처불교 추방을 '정화'로 정당화하고 있는 반면 태고종은 사태의 성격을 '법난'으로 규정하며 기회있을 때마다 반론을 제기했다. 조계종이 현재의 모습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것은 이로부터 상당시간이 흐른 1962년이었다.
1960년대는 천주교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던 때였다. 특히 60년대 중반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천주교계 발전에 획기적 계기가 됐다. 이로써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던 미사가한국어로 가능하게 됐고, 교회건물도 한옥양식이 허용되는 등 현지문화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바티칸의 방침이 바뀐 것이다. 특히 구원이 천주교회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있으며 비종교인 역시 구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이후 타 종교와의 교류에 중요한 디딤돌을 마련했다.
종교계뿐 아니라 국가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한것도 그 무렵이었다. 마산교구장인 그는 68년 일약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곧바로 추기경이 됐다. 그는 70년대의 민주화 운동에서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했고, 이는 천주교세의확장에도 크게 도움이 됐다.
유신정권이 들어선 70년대에 종교계는 사회단체 등과 함께 민주화를 향한 목소리를 높였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의 움직임이 특히 두드러졌다.79년 명동성당에서 열린 3.1구국선언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종교계는 70년대를 지나면서 진보와 보수로 진영이 엇갈리면서 활동영역이 크게 달라졌다.KNCC 등 진보단체와 교회가 민주화와 인권에 깊은 관심을 가진 반면 보수진영은 교세확장에 주력했다. 여의도광장의 부활절 연합예배에 1백만명의 신자가 몰려 대성황을 이룬 것도그때였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노선차이는 곧바로 신학논쟁과 연결됐다. 진보진영은 구원 영역을사회로 확대한 반면 보수교단은 개인으로 국한해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개인구원을 앞세운보수 교단과 교회가 물량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가 횡행한 가운데 교회건물이 초대형화하고 행사가 지나치게 화려해지는 등 영성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80년대에는 통일운동 본격화를 계기로 종교계에서도 이같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90년대 들면서는 종교지도자의 방북이 잇따라 실현되고 대북지원도 활성화하면서 통일에 종교가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곽선희 목사와 권호경목사, 영천 은해사 신법타 스님, 최창무 주교 등이 잇따라 북행길에 올랐고, 89년에는 문익환 목사가 밀입북해 물의를 빚었다.
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종교계의 대북지원사업이 더욱 활발해졌다.한국 종교계는 그동안 양적 팽창을 거듭했으나 질적 도약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있어 이에대한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즉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쓰이는몫은 정작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오대양 사건등이 말해주듯이 교리의 혼란은 사이비 종교의 태동 여지를 제공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처도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한미 정상회담 국방비 증액 효과, 'TK신공항' 국가 재정 사업되나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李대통령 "위안부 합의 뒤집으면 안 돼…일본 매우 중요"